수상한 구글
OpenAI가 생성형 AI 전쟁을 촉발시킨 이후 구글, 메타, 아마존 등 OpenAI와 비교할 수 없이 큰 테크 기업들이 이 분야에 줄줄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OpenAI를 뛰어넘는 기업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구글은 ChatGPT가 출시된 지 약 3개월 만에 '바드(Bard)'를 출시하고, 얼마 전에는 '제미나이(Gemini)'까지 공개하며 지속적으로 이 분야에 대해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여전히 구글이 OpenAI에 비해 한 발짝 또는 두 발짝 뒤처져 있다고 평가합니다.
여기서 의아한 것은 두 기업을 객관적으로 비교했을 때, 구글이 OpenAI보다 부족한 점이 없어 보인다는 점인데요.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구글은 지난 2014년 딥마인드를 인수하며 연구소 역할을 맡기고 있습니다. 딥마인드는 구글의 든든한 지원 아래 연구와 개발을 집중해 왔고, 2016년에는 알파고를 세상에 내놓으며 충격을 선사함과 동시에 대중들에게 '딥러닝'이라는 개념을 각인시키기도 했습니다. 최근 생성형 AI 모델의 경우 딥러닝 기술, 특히 심층 신경망을 기반으로 구축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기술적 노하우에 대한 출발점이 빨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규모와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구글(+딥마인드)이 앞서는 상황입니다. 딥마인드의 직원은 1,000명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구글 자체적으로도 강력한 리서치 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OpenAI의 임직원은 약 700명 정도의 규모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인력 규모가 반드시 성공적인 서비스 개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글이 규모 면에서 결코 부족하지 않아 보이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생성형 AI 개발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클라우드 컴퓨팅의 지원입니다. AI 개발에서 학습의 방법뿐만 아니라, 충분한 학습을 통해 성능을 향상하는 것도 필수적입니다. 이는 초기 생성형 AI의 근간이 되었던 '대형 언어 모델(LLM)'이라는 이름에서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OpenAI의 경우, 마이크로소프트부터 전폭적인 클라우드 컴퓨팅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에 ChatGPT를 적시에 출현시킬 수 있었습니다. 반면, 구글은 글로벌 3위 수준의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인데요. 이는 딥마인드 역시 필요한 만큼의 지원을 받는 데에 제약이 덜 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구글의 의지만 있었다면 OpenAI가 받았던 지원과 비교해도 결코 부족함 없는 지원이 가능했을 것을 시사합니다.
이처럼 규모나 환경, 기술적 노하우 측면 등에서 구글이 OpenAI보다 뒤처질 이유가 없어 보임에도 구글은 여전히 OpenAI에 뒤처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핵심 인력 이탈
최근 OpenAI에서 발생한 샘 올트먼 해임 사건에서 주동자로 지목된 인물은 일리야 수츠케버인데요.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게 덜 알려진 이 인물에 우리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츠케버는 ChatGPT개발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관련하여 그에 대한 평가 중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OpenAI 개발자 700명보다 수츠케버 한 사람이 더 뛰어나다"
특히 수츠케버는 과거 딥마인드 소속으로 알파고 개발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한데요. 이는 알파고와 ChatGPT와 같은 현대 AI의 중요한 연대기에서 모두 핵심 인물로 꼽히고 있다는 뜻입니다. AI와 같은 고도로 발달된 기술의 경우 천재 개발자가 만들어 내는 한 끗이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수츠케버의 존재가 두 기업 간의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었을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수츠케버 외에도 생성형 AI 시대를 기점으로 구글과 딥마인드 소속의 핵심 인력 이탈이 굉장히 많았는데요. 생성형 AI 스타트업 기업가치 순위에서 각각 3위와 9위에 오른 Cohere, Inflection AI를 비롯해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x.AI 등으로 구글과 딥마인드의 핵심 임직원들이 대거 이동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구글은 가장 중요한 시기에 핵심 인력의 대규모 이탈이 이어지며 추진력을 잃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카니발리제이션
"카니발리제이션 : 한 기업의 신제품이 기존 주력 제품의 시장을 잠식하는 현상"
이 용어는 동족 포식 또는 동족 살해를 뜻하는 카니발리즘에서 유래되었는데요. 기업에서 신제품을 내놓았을 때 매출 증대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 주력 상품의 매출만 떨어드리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대표적인 사례로는 코닥이 꼽히는데요. 코닥은 소니보다 6년이나 앞선 1975년에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해 두었지만, 이를 출시할 경우 필름 매출이 감소될 것을 우려하여 시장에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디지털카메라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코닥은 오히려 시장 대응에 늦었고, 2012년 파산 보호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구글 역시 비슷한 우려를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재 검색, 광고, 클라우드를 주력 서비스를 보유하고 있는 구글은 새로운 형태의 생성형 AI 기술을 전면에 내세웠을 때, 기존 사업 영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리스크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했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생성형 AI는 검색 엔진의 근본적인 작동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에, 이러한 변화가 기존 사업 모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신중한 고려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쉽게 말해, 기존 주력 서비스를 지키기 위해 구글이 오히려 소극적인 대응을 해왔다고 예상해 보는 것인데요.
이와 관련하여 딥마인드의 공동 창업자 무스타파 슐레이만은 상장기업인 구글의 특성상 투자자들의 시선 때문에 전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연구원들과 엔지니어들을 갖추고도 한 동안 해당 분야에 대한 발전이 더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ChatGPT가 출시되기 전까지는 투자자들이 재무적으로 알아차리기 힘든 정도로만 투자하면서 독자적 상용화보다는 자사 제품 용도 혹은 논문을 발표하며 연구 성과에 집중하고 있었다고도 전해집니다.
OpenAI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구글이 OpenAI를 뛰어넘지 못했던 이유를 뒤집어 보면, OpenAI의 성공 요인이 됩니다. 먼저, '안전하고 윤리적인 AI 개발'이라는 분명한 비전은 수츠케버와 같은 유능한 인재를 끌어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상업적 성공보다는 기술의 진보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시험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스타트업과 빅테크 기업 간의 독특한 역학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빅테크 기업이 거대한 자본을 들여 기술 개발을 하더라도 스타트업이 명확한 비전과 뾰족한 한 가지 전략을 통해 정면 승부 한다면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입니다.
만약 구글이 딥마인드를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와 OpenAI와의 관계처럼 정립됐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상상을 해보며 글을 마칩니다.
자료출처 : Tech잇슈 구독하기 (stib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