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생성AI 화두는 ‘사용자 경험’
지난 9일(현지시간) 열린 CES 2024 현장. 수많은 인공지능(AI) 서비스가 공개된 가운데, 한 스타트업의 제품이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래빗(Rabbit)이 선보인 한 손 크기의 AI 에이전트 기기 ‘r1’이다. r1은 별도의 조작 없이 음성 명령만으로 음식 주문, 호텔 예약 등 다양한 작업을 수행한다.
r1의 작동 원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사용자의 음성 명령을 스마트폰에 전달해 앱을 구동하는 방식이다. 일종의 ‘앱 컨트롤러’인 셈. 게다가 자체 AI 칩을 내장하지 않은 탓에 스마트폰이 없거나 무선 환경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프란시스코 제로니모 IDC 부사장은 r1을 두고 “스마트폰의 AI 기능으로 수행할 수 있는 서비스”라며 기술력 자체가 새롭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기술력에 대한 혹평에도 불구하고 r1은 행사 첫날부터 초도 물량 1만 대가 매진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편리했기 때문. 스마트폰을 켜고 앱을 조작하는 기존의 과정마저 ‘귀찮은’ 소비자에게 말 한 마디로 작동하는 r1은 제대로 통했다. ‘사용성’이 지갑을 연 셈이다.
r1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올해 생성AI 시장에 사용성이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생성AI 산업 선두인 구글, 오픈AI, 메타 등 빅테크가 서비스를 고도화하며 본격적인 소비자 사로잡기에 나섰다. 국내 대기업도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생성AI 서비스를 공개하는 등 실제 활용성에 중점을 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는 기술력뿐 아니라 실제로 얼마나 유용한지가 AI 서비스의 생존을 결정할 것”이라며 소비자 선택을 받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글로벌 빅테크, 더 편리하고 더 쉽게
오픈AI의 챗GPT는 누구나 일상 언어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AI 대중화의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모두가 챗GPT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명령어(프롬프트)에 따라 답변 수준이 달라지는 탓. 한 때 프롬프트 엔지니어의 연봉이 억 대로 치솟은 배경이 여기에 있다.
생성AI 시장의 성숙도가 무르익은 가운데, 단순히 참신한 기술력 보다는 더 나은 사용자 경험 요구하는 소비자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이에 글로벌 빅테크가 사용성을 개선한 서비스를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최근 구글은 일반 소비자를 겨냥한 생성AI 서비스를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광고 제작 서비스가 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구글은 자체 대형언어모델(LLM) 제미나이를 기반으로 하는 ‘구글애즈(Google Ads)’를 공개했다. 광고주가 웹사이트 주소와 이미지, 키워드 등을 입력하면 광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서비스다.
핵심은 편리한 사용성이다. 구글은 광고주가 구글애즈를 통해 더 쉽게, 더 높은 품질의 광고를 구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챗봇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몇 달 내 모든 광고주를 대상으로 상용화한다는 방침이다.
오픈AI도 사용성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오픈AI는 온라인 챗봇 장터 ‘GPT 스토어’를 공개했다. 애플의 앱스토어와 동일한 개념으로, 다양한 ‘커스텀 챗봇’을 사고 팔 수 있다. 커스텀 챗봇은 일반 챗GPT와 비교해 특정 분야에 더 정확하고 빠른 대답을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종전의 복잡한 프롬프트 입력 과정 없이도 누구나 챗GPT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
현재 약 15만 개의 챗봇이 등록된 상태로 챗GPT 유료 구독자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오픈AI가 본격적인 수익화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커스텀 챗봇 제작자에게 수익을 분배한다고 밝혔기 때문. 오픈AI는 이를 통해 유료 사용자를 늘린다는 구상으로 올해 1분기 중 수익 모델을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메타(구 페이스북)도 비슷한 행보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마크 저커버그 메타 창업자는 ‘인공일반지능(AGI)’ 개발을 공식 선언했다. AGI는 인간처럼 추론하는 AI다. 메타가 AGI 개발에 나선 이유도 사용자 경험 향상에 있다.
마크 저커버그는 “챗봇, 크리에이터, 비즈니스를 위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지금보다 전반적인 영역에서 더 발전한 AI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SNS나 스마트 글래스와 같은 자사 서비스에 AGI를 접목, 소비자 만족도를 높인다는 구상이다.
빅테크가 사용성 개선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수익화에 있다. 현재 AI 기업은 막대한 서버 운영비와 개발 비용 등으로 대부분 흑자 전환에 이르지 못한 상태다. 실제로 오픈AI의 하루 운영비는 70만 달러(약 9억원) 수준으로, 지난 2022년에만 약 5억4000만 달러(약 7015억원) 적자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생성AI 시장에서 수익화라는 과제를 마주한 빅테크가 서비스의 사용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기업, 특정 분야 전문성 갖춘 AI 선봬
국내 기업도 생성AI 서비스의 사용성 개선과 수익화를 추진 중이다. 글로벌 빅테크와의 기술 격차를 의식한듯, 범용성 대신 한 분야에 특화된 서비스를 개발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통해 비용 측면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구상이다.
네이버는 지난해 LLM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한 뒤 관련 서비스를 순차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AI 검색 챗봇 ‘큐:’를 네이버 포털에 적용했으며, 지난 24일에는 생성AI 광고 상품 ‘클로바 포 AD’의 테스트를 시작했다. 클로바 포 AD는 광고주를 위한 서비스로, 검색 광고 하단에 삽입된 브랜드 챗봇이 고객의 질문에 답을 하고 제품을 추천한다. 이를 통해 광고 클릭률과 구매 전환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특정 산업에 대한 전문성을 극대화한 생성AI 서비스도 나왔다. LG는 지난해 LLM ‘엑사원(EXAONE)’을 공개한 뒤 이를 기반으로 한 몇 가지 플랫폼을 공개했다. ‘엑사원 유니버스’는 전문가용 대화형 챗봇으로, AI 및 머신러닝 분야를 비롯해 화학, 바이오, 의료 산업 등에서 전문가 수준의 답변을 제공한다. 또 ‘엑사원 디스커버리’는 화학 및 바이오 분야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학습, 소재 합성 예측 등을 수행할 수 있는 연구 특화 AI 플랫폼이다.
통신사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SK텔레콤은 지난해 9월 자체 LLM ‘에이닷엑스 LLM’을 선보인 뒤 이를 활용한 AI 개인비서 ‘에이닷’을 정식 출시했고, KT는 기업 고객 전용 초거대 AI ‘믿음(Mi:dm)’을 내놓았다. LG유플러스는 올해 초 맞춤 생성AI ‘익시젠’을 상용화할 계획이다. 통신사 특성상 고객의 다양한 데이터를 확보한 만큼, 상대적으로 개인 맞춤에 특화된 서비스 개발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인터넷 없이도 AI 쓴다… 온디바이스 AI
온디바이스 AI 제품도 올해 화두가 될 전망이다. 온디바이스 AI는 기기 안에 AI 칩이 내장돼 인터넷 연결 없이도 AI를 이용할 수 있는 방식을 뜻한다. 별도 클라우드(서버)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챗GPT와 같은 기존 생성AI 대비 처리 속도가 빠르며, 보안에 강하다는 장점이 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삼성이 공개한 갤럭시S24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갤럭시S24는 데이터나 와이파이에 연결돼 있지 않아도 실시간 통역, 번역, 요약, 이미지 생성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 언제 어디서나 생성AI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애플과 구글도 AI 스마트폰 출시 계획을 밝혔다.
인텔은 지난해 12월 ‘AI 에브리웨어’ 시대를 선언하며 AI PC 시장 진출을 밝혔다.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CES 2024 기조연설에서 “앞으로 클라우드를 이용하지 않고도 AI PC를 통해 자신 컴퓨터에서 모든 업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국내외 반도체 회사가 최근 AI 칩을 잇따라 공개 중이다. 온디바이스 AI 제품 성능이 AI 칩에 좌우되기 때문.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와 AMD는 지난 CES 2024 기간 동안 AI 칩을 선보였으며, 삼성전자도 같은 시장을 겨냥한 D램 라인업을 공개했다.
‘환각 현상’은 여전한 과제
답변의 신뢰도는 생성AI 서비스의 사용자 경험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다. 때문에 ‘환각 현상(할루시네이션)’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현재 파인튜닝과 검색증강생성(RAG)이 주요한 해결 방안으로 꼽힌다.
파인튜닝은 생성AI에 특정 데이터셋을 학습시켜 오답률을 낮추는 작업이다. 일종의 특정 분야 전문가로 만드는 셈. 답변의 최신성과 적합성을 높일 수 있지만, 데이터 용량 증가에 따른 비용 상승과 지속적인 업데이트 필요성은 단점으로 지목된다.
RAG은 최근 들어 주목 받는 기술이다. 생성AI가 답변을 생성하기 전 외부의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참조해 답변의 적합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파인튜닝에 비해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은 낮지만, 답변을 한번 더 체크하는 과정이 추가돼 환각 현상 방지에 유리하다는 평가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RAG를 활용한 곳이 등장하고 있다. AI 스타트업 스켈터랩스의 경우 대화형 AI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RAG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출시, 실제 사용 사례까지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스켈터랩스 관계자는 “파인튜닝의 경우 새로운 데이터를 끊임없이 학습 시켜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며 “반면 검색증강생성 기술은 모든 답변을 ‘근거 있게 생성(based on retrieval evidence)’하는 작동 원리를 갖고 있어 태생적으로 환각 현상 방지에 더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온디바이스 AI 분야에서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콘텐츠 확보다. 이번 CES 2024에서 인텔과 AMD, 삼성전자, LG전자, 델, 레노버 등 모든 컴퓨터 제조업체가 인터넷 연결 없이 활용할 수 있는 AI PC의 도래를 선언했지만, 정작 쓸 만한 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는 AI 스마트폰 시장도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해 데이비드 맥아피 AMD 기업 부사장은 “현재 AI PC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은 많지 않지만 앞으로 꾸준히 출시될 것”이라는 계획을 전했다.
자료출처 : “쓸 만해야 살아남는다” 올해 생성AI 화두는 ‘사용자 경험’ - DIGITAL iNSIGHT 디지털 인사이트 (di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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