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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와 롯데온, 직급 폐지 후가 더 중요합니다


왜 유독 이커머스만 폐지하나요?

최근 유통 업계에서 직급 폐지 바람이 거셉니다. 단 '이커머스'에 한정해서만 불고 있다는 게 특징인데요. 올해 1월 롯데온을 운영하는 롯데이커머스 사업부가 직급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커리어 레벨제를 시행한다고 선언한데 이어, 지난주에는 SSG닷컴도 유사한 형태인 그레이드제를 도입하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레벨제라고 불리는 이러한 형태는 구성원이 보유한 전문성에 초점을 둔 제도입니다. 그렇기에 아무래도 개발자들을 평가하고 관리하기에 유용했고요.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사실 많은 리테일 기업 중 이커머스 기업, 혹은 사업부에서 유독 레벨제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들이 채용 시장에서 테크 기업들과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개발 역량이 경쟁에서 점차 더 중요해지자, 전문 인력을 구하기 위해 인사제도를 이들의 입맛에 맞게 바꾼 것인데요. 아예 쿠팡은 사업 초기부터 직급 대신 레벨을 부여하는 제도를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전통 유통기업들도 늦게나마 이러한 흐름에 맞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건, 충분히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일 아닌가 싶습니다.

수박 겉핥기가 되지 않으려면

하지만 단순히 겉모양만 테크 기업을 따라 한다면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겁니다. 우선 직급제 폐지는 단지 호칭을 바꾸는 걸 넘어서, 반드시 역량 기반의 승급 제도와 성과 중심의 유연한 보상 체계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잘 운영되는 조직들을 보면, 내부에 데이터 리터러시*가 잘 구축된 경우가 많았는데요. 여기서 데이터라는 키워드가 나오는 이유는, 경영 활동의 결과가 데이터로 집계가 되고 이를 기반으로 평가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이 자리 잡아야, 레벨제와 같은 제도들이 안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개발 직군을 레벨제 안에 포괄하여 관리할 수 있었던 건, 이들의 역량과 성과를 어느 정도 객관화하여 평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평가와 승급 기준의 객관화가 어렵다면, 오히려 이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커머스 기업 비개발 직군 내에서도 매출이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는 MD는 그나마 나을 테지만요. 다른 직군들은 평가나 승급에 있어서 객관성을 확보하기가 결코 쉽지 않고, 보이지 않는 불만이 지속적으로 누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존의 일하던 방식을 데이터 중심의 새로운 것으로 온전히 바꾸지 않는다면 말이죠.

※데이터 리터러시: 데이터를 탐색 및 이해하고, 데이터로 소통하며, 이를 업무에 활용하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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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유연한 보상 체계 역시 쉽게 구축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작년 9월 인크루트와 데이터솜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심지어 월 단위로 업무를 평가하고 보상하는 조금 더 급진적인 레벨제에도 10명 중 7명 정도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는데요. 이렇게나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이유로는 '업무에 대한 동기부여'를 첫 손에 꼽았습니다. 이는 기대한 수준의 보상이 주어진다면 성과도 늘겠지만, 반대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평가 압박에 의한 스트레스만 부각되어 조직의 사기가 저하될 거란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보상 체계를 바꾸는데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앞서 말한 평가 기준의 객관화가 전체 회사의 일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면, 보상 방식의 변화는 경영진의 대대적인 인식 개선과 연관성이 큽니다. 여전히 국내 기업들은 보상 확대에는 박한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해고가 자유롭지 않다는 국내 경영 환경의 특수성도 고려해야겠지만요. 바꿀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어 보이기에, 경영진이 적극적인 자세로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야, 인사제도의 개편이 실제 경영 성과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중요한 건 신뢰 아닐까요?

이처럼 최근 이커머스 업계만 봐서는 승급제 폐지가 이슈일지 모르지만, IT업계 전체로 시야를 넓혀보면 역시나 재택근무 축소가 가장 뜨거운 감자라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국내를 대표하는 테크 기업들까지도 점차 재택근무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데요. 재택을 상정하고 이사를 하던가, 개인 계획을 세웠던 직원들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혼란을 불러온 건, 결국 채용 시장 내 경쟁력 유지를 위해, 무분별하게 트렌드를 쫓아 내려졌던 의사결정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있어 인사제도가 중요한 만큼, 신중하게 결정했어야 했던 거죠. 이렇게 바로 포기할 거였다면 애초에 시작을 하지 않았던 게 좋았을 겁니다.

반면에 여전히 재택근무를 고수하는 일부 기업들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아마 이들은 향후 채용 시장에서 보다 선도적인 입지를 차지할 가능성이 클 겁니다. 왜냐하면 일관성을 유지하여 잠재적인 후보자들에게 신뢰를 얻었으니까요. 당장의 비용 부담은 늘어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기업들은 브랜딩의 승자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따라서 이번 직급 폐지나 보상제도 개편도, 결국 얼마나 영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를 위한 환경이 잘 갖춰져 있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게 될 겁니다. 특히 올해 들어 새로이 제도를 개편한 두 기업은 아마 사전에 많은 고민과 연구를 했을 것 같은데요. 이들의 도전이 좋은 선례가 되어, 전체 시장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촉매제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