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기업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이유
최근 ‘파타고니아(Patagonia)’ SNS에서 진행 중인 챌린지가 있습니다. ‘언패셔너블 챌린지(Unfahionable Challenge)’로 명명된 해당 챌린지는 ‘한 철이 아닌 여러 해를 위한 옷’이라는 부제와 함께 소비자가 파타고니아의 제품을 몇 년이나 착용했는지를 인증하는 내용이었는데요.
많은 소비자는 파타고니아의 티셔츠, 재킷, 모자 등 다양한 제품을 착용한 모습을 찍어 올리며 해당 제품과 몇 년이나 동고동락 했는지를 전했습니다.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파타고니아는 환경을 위해 하나의 제품을 오래 입기를 권장하는 브랜드 메시지가 단순히 홍보성에 그치는 게 아닌, 진솔한 철학임을 피력하는 동시에 자사의 철학이 소비자의 공감을 얻어 실현되고 있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죠.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금전적 보상 때문이 아니었을지 의심할 수 있지만, 해당 챌린지에 참여한 소비자에게 파타고니아가 제공하는 보상은 스티커가 전부였습니다. 파타고니아 스티커는 매장을 방문해서도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으니, 보상을 목적으로 소비자가 참여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죠. 그렇다면 소비자는 왜 파타고니아의 챌린지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걸까요?
브랜드는 나의 거울
지난해 마케팅·컨설팅 업체 ‘케피오스(Kepios)’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60%는 SNS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SNS는 이미 또 다른 사회적 활동의 창구로 활용되고 있는 상태죠. 현실과 차이가 있다면 SNS는 보다 자신의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거나 의도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고, 어떤 철학을 지지하는지 등을 가시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입니다.
소비자는 SNS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적극적입니다. 어떤 소비자는 SNS 계정 별로 캐릭터를 달리해 표현하는 ‘멀티 페르소나’의 양상을 보이기도 하죠. 이런 상황에서 브랜드에 대한 선호와 취향을 공개한다는 건 곧 좋아하는 브랜드의 성격이 자신을 대변한다는 의미로 작용합니다. 스트릿 브랜드 ‘스투시(Stussy)’와 스케이트 보드화 브랜드인 ‘반스(Vans)’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스케이트 보드 등 스트릿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는 단순히 취향을 넘어 도덕과 양심의 영역으로도 귀결됩니다. 초콜릿 생산 업계의 불평등한 임금 구조를 고발하고 공정무역을 통해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공정한 대가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토니스 초코론리(Tony’s Chocolonely)’ 제품에 대한 선호를 SNS에 드러낸다면 공정무역을 지지하는 소비자로 여겨지는 것처럼 말이죠.
따라서 소비자는 브랜드에 대한 선호나 지지를 나타낼 때 브랜드의 사회적 평판을 고려합니다. 소위 착한 브랜드를 지지하는 것과 사회적 논란에 처한 브랜드를 지지하는 게 어떻게 비춰질지는 쉽게 연상되니까요.
파타고니아 챌린지에 많은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 또한 파타고니아의 사회적 평판을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소비자가 많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파타고니아는 오랜 기간 환경 보호에 대한 경영 철학을 실천해온 결과 환경 보호에 대한 진정성을 인정 받은 대표적인 브랜드니까요.(관련 기사: 파타고니아는 어떻게 가장 사랑 받는 브랜드가 됐을까?)
언패셔너블 챌린지 또한 기후 위기 시대의 소비주의에 대한 인식 개선과 행동 변화를 촉구하는 ‘언패셔너블 캠페인’의 일환이었습니다. 최지우 파타고니아코리아 마케팅팀 차장은 “유행을 따르지 않고 오랜 기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고 선택하는 것을 장려하는 게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했고, 환경을 위한 우리의 캠페인에 관심과 참여를 독려하고자 했다”며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진정성에 캠페인 기획 의도가 기반했음을 밝혔습니다.
나날이 중요해지는 사회적 평판
과거에도 브랜드의 사회적 평판은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양상에는 다소 차이가 존재합니다.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차이는 바로 영향이 미치는 속도입니다. 미국의 패션 브랜드 ‘아베크롬비&피치(Abecrombie&Fitch)’는 ‘백인만을 위한 브랜드’를 표방하며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 아시아 지역에 매장을 오픈하지 않는 등 브랜드 운영에서 여러 인종차별적 요소를 비췄고, CEO의 사회적 물의 또한 빈번했습니다. 그럼에도 매출액이 본격적인 하향세로 접어든 것은 -11%라는 큰 폭의 하락을 기록한 2013년 이후였죠.
만약 SNS가 활성화된 현 시점에 이러한 논란이 있었다면 아베크롬비&피치는 이처럼 오래 버티지는 못했을 겁니다. 자칫 인종차별주의자로 오인될 수 있음에도 해당 브랜드의 제품을 구매하고 SNS에 공유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이처럼 SNS의 활성화로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표현되는 일은 전례 없이 쉽고 빈번해졌습니다. 과거에는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브랜드 제품 구매, 서비스 이용 등 실제적인 행동에 그쳤다면, 이제 SNS에 해당 브랜드 관련 콘텐츠를 게재하는 것만으로도 브랜드에 대한 선호를 나타낼 수 있게 됐죠.
이는 참여형 마케팅, 바이럴 마케팅 등 직선적인 마케팅보다는 선회적인 마케팅 전략이 확산됐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하게 작용합니다. 홍보에 한해 소비자는 브랜드의 자체적인 목소리보다는 시민의 목소리나 팔로우하고 있는 인플루언서의 의견에 크게 설득됩니다. 최근 계속해서 활성화되고 있는 소셜 커머스에서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관련 기사: 유튜브가 쇼핑 기능을 고도화하는 이유)
긍정적인 사회적 평판을 확보하지 못한 브랜드의 경우 앞선 파타고니아의 사례처럼 챌린지 등 참여형 마케팅에서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도 어려울 것이며,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마케팅에서도 인플루언서 섭외에 어려움을 겪을 확률이 높습니다.
반면 긍정적인 사회적 평판 확보에 성공한다면 매출 상승은 물론 참여형 마케팅에서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소비자의 자발적인 SNS 활동으로 부수적인 홍보 효과 또한 누릴 수 있습니다.
긍정적 사회적 평판을 쌓아 ‘착한 기업’으로 거듭난 대표적 사례는 ‘매일유업’이 있습니다. 매일유업은 5만명 중 1명꼴로 태어나는 선천성 대사이상을 가진 아기들이 시중에 판매되는 분유를 섭취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해 매년 적자를 감수하고 선천성 대사이상을 가진 아이들이 섭취할 수 있는 특수 분유를 판매해 화제가 됐고, 이외에도 독거노인의 영양 보충과 고독사 방지를 위한 주기적인 우유배달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여러 사회적 기여를 통해 대표적인 착한 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매일유업은 이를 통해 우유 소비가 계속해서 줄어드는 시장 환경에도 꾸준한 매출액 성장을 기록해 작년에는 1조8156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매출액 성장에 다양한 신제품 출시 등 여러 전략의 영향을 배제하기는 어렵지만, 매일유업의 경쟁사인 남양유업이 경영 일가의 문제 등 여러 구설수로 브랜드 평판을 실추해 2019년 1조308억원에 달했던 매출액이 다음 해 9489억원으로 떨어진 사례를 보건대 매일유업의 지속적인 매출액 성장에 긍정적인 브랜드 평판이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브랜드 평판, 방패에서 창으로 거듭날 때
다만 브랜드 평판을 이익을 위한 도구로만 생각하는 관점은 경계해야 합니다. 브랜드 컨설팅 전문 기업인 ‘앤드류와이어스’의 김해경 대표는 “많은 브랜드가 ‘평판관리’라는 명목으로 나쁜 소문과 버징을 방지하기 위해 좋은 평을 받을 만한 ‘거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막는 데 중점을 둔 CSR* 활동은 명분을 따라가기 바빴고, 결국 그런 브랜드는 아무런 효득을 찾지 못하고 조용히 CSR, ESG* 같은 간판을 내렸다”고 전했습니다.
*CSR: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의 약자로, 기업이 지속적으로 존속하기 위한 이윤추구활동 이외에 법령과 윤리를 준수하고, 기업의 이해관계자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함으로써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책임 있는 활동
*ESG: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ce)의 알파벳 앞 글자 딴 용어로, 기업이 장기적 관점에서 친환경, 사회적 책임과 투명한 경영을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것
소비자는 영민합니다. 김 대표의 이야기처럼 이익을 위해 착한 척 시늉만 하는 행태를 모를 리 없죠. 앞서 파타고니아가 소비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챌린지를 적극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파타고니아의 진정성에 대한 소비자와의 교류와 이해가 바탕이 됐기 때문입니다. 이는 결코 시늉만 해서는 만들 수 없는 연결성이죠.
실제 파타고니아코리아의 최 차장은 “오랜 기간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진행하며 많은 소비자가 오래 옷을 입는 것을 멋지고 쿨한 행동으로 믿는다고 느꼈다”며 자사의 경영 철학에 소비자가 공감하고 있음을 확신했다고 전했습니다.
진정성을 바탕으로 브랜드와 소비자의 유기성이 강화되는 것은 브랜드의 철학과 활동을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투명하게 세상에 내비치고 있습니다. 앤드류와이어스의 김 대표가 브랜드의 사회적 평판에 대해 고민하는 일을 파타고니아 같은 ‘특출난’ 브랜드에 국한된 행위가 아닌 브랜드가 취해야 할 당연한 자세로 평가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사회적 평판이 브랜드 선택의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된 현 시점에 이를 핑계로 쓰기 위한 ‘하는 척’은 통하지 않습니다. 브랜드는 사회적 평판의 본질에 집중해 이를 성장을 위한 무기로 여겨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 사회적 평판은 ‘방패’로 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를 ‘창’으로 써야 할 때입니다. 브랜드란 방어해서 연명하는 것이 아닌 공격으로 나아가는 것이니까요
김해경 앤드류와이어스 대표
자료출처 : 브랜드, 소비자의 거울이 되다 - DIGITAL iNSIGHT 디지털 인사이트 (di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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