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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리의 기업가치가 여전히 3조 원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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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리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지난 4월 10일, 컬리가 앵커 PE로부터 1,000억 원 규모의 추가 투자를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컬리는 또 다른 기존 투자자들과도 추가 투자를 논의 중이라고 하는데요. 최종적으로는 1,2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이는 컬리에게는 오래간만에 좋은 소식이었는데요. 올해 1월 상장을 철회한다고 밝힌 이래 다양한 부정적 전망에 시달려 왔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3조 원이라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건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데요. 고점 기준으로는 4조 원까지 거론되던 몸값이, 상장 신청 당시 무려 1조 원 아래로 떨어진 것에 비해선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당연히 기존 투자자가 본인이 가진 지분의 가치 방어를 위해 컬리에 대해 일정 부분 고평가한 덕분이긴 합니다. 앵커 PE가 바로 컬리에 4조 원이라는 가격표를 붙여 무려 2,500억 원을 투자했던 당사자이거든요. 하지만 아무리 기존 투자자라고 하더라도, 컬리가 자신의 로드맵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다면, 추가 투자를 결정하거나, 3조 원이라는 기업가치를 인정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컬리는 상장보다는 추가 투자 유치를 통해 시간을 버는 것이 플랜 A였던 걸로 보이는데요. 상장 철회 이전부터 투자 관련 논의가 있었어야 지금 시점에 이를 확정 짓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투자로 인해 컬리는 기존 1년에서 1년 반 사이로 추정되던 런웨이*를 2년 이상으로 연장시키는 데 성공하였는데요. 과연 2년 안에 승부를 봐야 하는 컬리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요? 컬리가 세웠을 전략을 한번 추측해 보았습니다.

※런웨이(run-way): 스타트업이 지금 가지고 있는 자금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기간

컬리가 미리 파둔 3가지 굴은?

우선 컬리가 내밀었을 첫 번째 카드는 역시나 뷰티컬리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컬리는 오랜 기간 유지해 오던 서비스 명을, '마켓컬리'에서 '컬리'로 바꿨을 정도로 뷰티컬리 론칭에 진심이었는데요. 작년 11월이라는 론칭 시점은 누가 봐도 올초 상장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각에서는 뷰티 확장이 온라인 장보기라는 기존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악수라고 평하기도 하지만요. 사업적으로만 보면 성장과 수익, 2가지 관점에서 모두 이는 탁월한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새벽배송의 효율을 높이고, 고객의 외연을 2030 연령대로 확장하며, 정체된 성장 속도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요. 다만 아직은 신규 서비스인 만큼 무언가 숫자로 증명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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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컬리는 신사업 하나에만 희망을 걸고 있는 건 아닙니다. 본진인 마켓컬리에서도 반전을 준비 중인데요. 우선은 전사적인 전략 방향을 고객 수의 규모 확대보다는 고객 생애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선회하여 수익성 증대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컬리는 2019년 기존 CJ대한통운에게 의지하던 중간 물류 거점 TC(Transfer Center)를 내재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2021년엔 새벽배송 서비스를 충청, 영남권으로 확장하는 등 물류 인프라 확충에 집중하였는데요. 따라서 내부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가 이들 물류센터의 가동률과 배송 차량의 공차율을 개선하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충분히 많은 주문 수가 필요했고, 따라서 고객 수 성장에 우선적으로 집중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쿠폰 등 프로모션에 의지하게 되었고, 쿠폰으로 성장한 서비스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매출 규모는 정상 궤도에 올랐고, 여유 자금 역시 넉넉하지 않기에 성장보다는 수익으로, 신규 고객 확보보다는 충성 고객 육성으로 전략을 변경한 겁니다. 그래서 컬리 베네핏이라는 새로운 멤버십도 테스트하고, 현재는 뷰티컬리를 제외한 프로모션은 완전히 축소시킨 상황이고요.

다만 이렇게 되면 수익성은 개선될지 몰라도 당연히 성장성은 저하되게 됩니다. 그리고 뷰티컬리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신사업이기에 여전히 리스크가 있는 상황이고요. 그래서 컬리는 이달 6일 동남권 물류센터를 오픈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 찾기에 나섰습니다. 재작년 컬리가 영남권에 샛별배송을 선보이긴 했지만, 물류센터 부재로 인해 수도권과 달리 오후 6시까지 주문을 완료하는 경우에만 이용 가능한 반쪽자리였는데요. 이제는 동일하게 오후 11시까지 주문한 모든 주문에 대해 샛별배송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진 겁니다. 영남권은 수도권을 제외하면 가장 큰 시장이라 할 수 있기에, 이번 오픈을 계기로 컬리는 새로운 성장 엔진을 얻게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실제로 컬리는 대대적인 프로모션 행사를 진행하며 이를 홍보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컬리는, 올해 뷰티컬리가 기대보다 부진하더라도, 최소한의 추가 성장 분은 확보했다고 볼 수 있고요.

이처럼 컬리는 적어도 최소한 3개의 굴을 미리 준비해 놓은 상황입니다. 만약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아마 컬리의 상장 재도전은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겁니다. 아마 이러한 로드맵에 동의했기에 앵커 PE 등의 투자자들도 한 번 더 컬리를 믿어보고자 했을 거고요.

왕관의 무게를 견뎌내야 합니다

물론 실제 컬리의 속내가 앞서 추측한 내용과 어느 정도 일치할지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적어도 컬리가 이번 추가 투자 유치를 통해 급한 불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는 겁니다. 이를 바탕으로 컬리는 올해와 내년, 마지막 기회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달려갈 거고요. 하지만 여전히 걱정되는 건, 이번 상장 철회 과정 때문에 컬리를 향한 신뢰도가 많이 떨어졌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상장을 하기도 전인데, 비상장 주식 거래 가격이 급락한 것을 두고 원색적인 비난을 가하는 기사가 나올 정도인데요. 유독 얻어맞는 컬리가 때로는 안쓰러워 보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는 컬리가 대한민국 스타트업계를 상징하는 아이콘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컬리는 많은 이슈를 모으는 기업이라 할 수 있고요. 지금은 여러모로 비판을 많이 받고 있지만, 결국 이 또한 관심의 방식 중 하나이기에, 컬리가 반등만 잘 해낸다면 이를 오히려 더 큰 성과로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이번 투자 소식 하나 만으로 분위기를 바꾸긴 어려울 것 같고요. 조금 더 빠르게 로드맵대로 진도를 빼서, 쿠팡처럼 최소한 분기 흑자 소식 정도는 전하는 일종의 쇼맨십이 필요해 보입니다. 과연 컬리는 올해 안에 무언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고 여론을 반전시킬 수 있을까요? 앞으로도 유심히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