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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내 취향 “그들은 알고 있다”


하이테크 아닌 하이터치의 시대.. 품질 아닌 ‘경험’을 팔아야 할 때

 

 

넷플릭스가 어느 날 제게 ‘베터콜 사울’이라는 영화를 추천했습니다. 내용도 주인공도 누군지 모르는 생소한 미국 드라마입니다. 장르는 ‘범죄’. 제 취향과 “98% 일치한다”고 넷플릭스는 말합니다.

그간 넷플릭스에서 본 것은 주로 한국 드라마로 <갯마을 차차차>, <나의 해방일지>, <우리들의 블루스>, <스물하나 스물다섯>, <사내 맞선>, <그린 마더스 클럽> 등입니다(끝까지 모두 다 본 건 아닙니다만..). 최근에는 <기묘한 이야기4>를 보고서 시리즈 원부터 다시 달리던 중, 지인이 <브레이킹 베드>를 추천해줬습니다. 1화를 보고 난 바로 다음 날, 넷플릭스 메인에 <베터콜 사울>이 떴습니다.

 

 

 

 

“범죄물을 안 좋아하는데 98%라니?!”

시청 기록을 살펴보니.. 실제 넷플릭스에서 재밌게 봤던 시리즈 중에 범죄물이 상당했습니다. <테이큰>, <본 아이텐티티>, <파이트 클럽>, <신세계>, <내부자들>, <악인전>, <범죄도시>, <악질경찰>, <검사외전>, <청년경찰>, <범죄와의 전쟁>, <베놈>, <파이트 클럽>,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우스 오프 카드>, <지정생존자> 등. 아주 최근에 시청한 게 아니었을 뿐, 또 최근 로맨틱 코미디의 핑크빛에 잠시 가려졌던 것일 뿐, 그간 저는 넷플릭스에서 범죄물이나 정치 스릴러를 상당히 즐겨보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좋아하는 영화/드라마 장르에 대해 물어보면 늘 “‘로맨틱 코미디'”라고 자신 있게 말했는데, 디지털 세계에서의 제 취향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오히려 더 정확하고 솔직하게 간파당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현실에서의 내 취향은 잘 잊히고 만나는 사람, 접하는 환경이 달라지면 수시로 변하기도 합니다. 반면, 온라인에서 내 취향은 항상 기록되고 ‘추적’됩니다. 그리고 플랫폼은 이를 기반으로 비슷한 취향의 콘텐츠를 ‘추천’합니다.

 

 


 

 

추적되는 취향, 추천받는 콘텐츠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왓챠 등이 내세우는 맞춤형 추천 시스템은 OTT 경쟁력을 결정짓습니다. 매달 정액을 내면 무제한 시청이 가능한 만큼, 개인별 정확한 추천 알고리즘을 갖추는 것이 고객 만족도와 호감을 높이는 핵심 요인입니다. 이는 고객 이탈 방지와 높은 플랫폼 충성도로 연결됩니다. 이 같은 전략은 OTT 플랫폼뿐만 아니라 쇼핑,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음악, 금융, 부동산, 언론사, 게임, 커뮤니티, 영화(VOD) 등 다양한 분야에 확대, 적용되고 있습니다.

 

 

(사진 = shutterstock)

 

 

디지털상에서 ‘나’는 플랫폼 이용 패턴에 따라 서로 다른 N개의 성향을 가지게 됩니다. 만약 유튜브에서 골프 하이라이트를 많이 본다면 구글 속에서 ‘나’라는 이용자는 ‘골프팬’으로 분류됩니다. 인스타그램에 맛집이나 요리 사진을 자주 업로드한다면 인스타그램 속 나는 ‘미식가’가 됩니다. 이렇게 분류된 고객은 기업이 개인화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서비스를 추천하는 데 중요한 연결고리가 됩니다.

이는 모두 ‘데이터’ 기반 전략입니다. 고객 데이터는 고객이 플랫폼에 접속하는 순간부터 수집되는데 보통은 개인정보가 포함되지 않은 비식별 데이터(Non-PII, Cookie 또는 ADID 등) 형태로, 서비스나 콘텐츠 이용 패턴에 따라 고객 성향을 구분하고 이를 추천 알고리즘에 반영합니다.

이처럼 기업들은 ‘내 취향’을 찾아주는 개인형 추천 서비스를 앞세워 월 구독료를 전기 요금 같은 고정 지출비로 자리매김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쌓이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비자와 관계를 형성해, 볼수록 매력적인, 안 써본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쓴 사람은 없는 ‘찐팬’으로 사로잡습니다. 데이터 기반 UX framework를 통해 정성·정량 데이터를 융합하고, 이것을 고객 맞춤형 인사이트로 기획하는 것이 DCX(디지털 고객 경험, Digital Customer eXperience)’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취향을 신경 쓰고 있다”
빅데이터로 고객 파고들기

 

제품과 서비스 등을 포함해 하루에 도시인이 접하는 브랜드는 무려 6000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내가 각별하게 애정을 품고 있는 브랜드는 그에 비하면 한 없이 적은 숫자일 것입니다. 브랜드가 범람하는 시대에 사람들이 집어 드는 건 세심하게 파고드는 브랜드입니다. 소비자들은 단지 품질이 좋아서, 필요해서가 아닌 ‘의미’와 ‘경험’을 간파당해야 지갑을 엽니다.

기업은 고객 경험 지도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포괄적이고 모호하던 ‘고객 중심’이라는 화두를 ‘고객 경험’으로 구체화하고, 잊지 못할 순간을 ‘경험’하도록 ‘니즈’를 더욱 면밀하게 분석합니다. 여기에 데이터가 쓰입니다. 보다 정확하게 소비자 심리와 취향을 꿰뚫기 위해서죠.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싶지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대화를 나누는 물리적 관찰만으로는 고객의 속마음까지 알기 어렵습니다. 앞서 넷플릭스 추천 사례처럼 고객은 자신의 취향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거나, 기존 서비스나 제품에 익숙해지다 보면 소비자들은 뭐가 불편한지, 개선점은 무엇인지 콕 집어 말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고객이 제품을 선택하고 재구매로 이어지는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 MZ세대가 소비의 주축으로 떠오르는 요즘 “과거 국내 기업이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것이 ‘품질’이었다면 MZ세대가 주도하는 디지털 시대에서는 ‘고객 경험’의 관점에서 제품을 바라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데이터와 경험 혁신에 성공한 대표적인 회사가 아마존입니다. 아마존은 먼저 빅데이터를 활용해 구매를 예측합니다. 목표 배송 시간이 ‘고객이 주문하기 전’이라는 아마존답게, 알고리즘에 따라 ‘구매가 예측되는 상품’을 미리 물류센터에 대기해 둡니다. 필요한 물건이 알아서 추천되고 주문하자마자 빠르게 배송되는 만족스러운 구매 경험으로 고객은 자연스레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고객이 모이면 셀러가 모입니다. 셀러가 모이면 고객 구성이 다양해집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마존은 IT 회사나 유통회사가 아니라 ‘고객 지향 회사’로 거듭났습니다.

 

 

(사진 = shutterstock)

 

 

「보랏빛 소(Purple Cow)가 온다」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마케팅 구루로 꼽히는 세스 고딘은 “마케팅의 타깃이 더 이상 ‘대중’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기존에는 판매율을 높여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마케팅 목적이었다면, 이른바 ‘엔데믹 시대’에는 불특정 다수보다 “로열티가 있는 소수에게 화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을 충족시킬 수 있는 마케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최대 유효 고객보다 최소 유효 고객을 위한 마케팅 전략이 더 중요해졌다”면서 “‘우리가 당신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보여준다면 충성 고객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제 글로벌 기업들은 하이테크(Hightech)가 아닌 하이터치(Hightouch)에 주력합니다. 고객의 마음을 사려면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고객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공감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유니클로는 SNS에서 고객 반응을 모니터링해 가장 호응이 높은 제품을 주력 판매 중입니다. 자라는 MIT와 함께 세계 2000개 매장의 판매와 재고 데이터를 분석해 매출을 최대로 높이는 재고 최적 분배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매장에서 어떤 제품이 잘 팔리는지 매장의 판매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적시에 공급해 최대 매출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넷플릭스 제작진은 시청한 시간, 시청자의 인구학적 분포뿐만 아니라 시청자가 어떤 단어를 검색하고 언제 어떻게 영화를 봤는지,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추천 등을 알고리즘의 계산 요소로 넣으면서 보다 과학적으로 고객 취향을 맞춥니다.

 

 


 

 

‘빅’하기만 한 데이터는 위험하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단지 데이터’에서 출발해 고객 경험을 분석하려는 방식은 경계해야 합니다. 데이터는 어디까지나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데이터 확보에만 치중해서는 의미 있는 통찰력을 얻기 힘들고 데이터가 오히려 혁신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노키아입니다. 노키아는 20년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 핸드폰 시장 1위였습니다.

 

 

(사진 = amazone webpage)

 

 

2009년 노키아에서 일했던 기술 인류학자 트리샤 왕의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중국 저소득층과 함께 지내면서 디지털 기기 사용 패턴 등을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 ‘저소득층이라 할지라도 스마트폰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들은 수입은 적지만 “스마트폰을 살 수 있다면 가격이 월급의 몇 배에 달하더라도 반드시 구매하겠다”며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노키아는 글로벌 1위 명성에 걸맞게 상당한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었고 자체적으로 수집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어떤 수치로도 스마트폰에 대한 중국 소비자의 열망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후 노키아는 핸드폰 왕좌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경진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노키아가 자체 수집한 데이터는 핸드폰 기기와 관련된 엄청난 분량의 리서치였는데, 고객이 원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이해하기 위한 데이터가 아니었다”면서 “데이터를 수집하기 전부터 고객에게 주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렇기에 빅데이터라 하더라도 “너무 ‘일반적인 데이터’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빅데이터를 분석하다 보면 “‘2030 세대가 4050 세대보다 디지털에 더 익숙하다’처럼 뻔한 결과를 도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혁신적인 경험과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규모가 큰 고객군을 우선하기보다 ‘이런 고객이 있었나’ 싶을 정도의 극단의 고객을 살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예를 들자면, ‘붕어빵을 선택할 때도 내용물을 자신의 기호에 맞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고객도, 제품도, 마케팅 방법도 쪼개고 더 쪼개야만 정확한 구조가 보이고, 그로 인해 새로운 시장이 발생하고 그 안에서 브랜드로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책 <디멘드>에 따르면 모든 마케팅 상황에 들어맞는 ‘만병통치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평균적 고객’이란 개념은 전혀 근거가 없고, 고객마다 서로 다른 고충 지도를 다양하게 가지며 ‘같은 고객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원하는 바가 달라진다’는 것도 잘 알기에 복잡한 시장을 하나의 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고 고객을 유입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는 소비자의 관성, 의심, 습관, 무관심입니다. 소비자들 대부분은 어떤 새로운 제품을 접할 때, 마음속에서 어떤 방아쇠가 당겨져 행동하도록 만들기 전까지는 구경꾼의 태도를 취합니다. 기업은 구경꾼인 소비자를 ‘고객’으로, 나아가 ‘찐팬’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통해 기회를 탐색합니다. 이때도 데이터를 활용합니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나 왓챠는 가끔 낯선 영화를 추천하는데요, 이는 본인도 미처 알지 못한 취향을 일깨워 영상 시청의 범위를 넓히려는 의도입니다. 때로는 본인의 코드 중 하위권에 있는 요소를 앞세우는 등의 기법을 통해 뜻밖의 영화를 사용자의 추천 리스트에 올리기도 합니다. ‘수십만 개의 감춰진 키워드 중 하나를 사용자에게 내밀고, 마지막 결론은 스스로 내리기를 기다리는’ 일종의 추천 알고리즘 실험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취향을 알고 있고 분석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영화 등 콘텐츠 및 시청자 성향 등을 수없이 많은 키워드로 잘게 쪼개고 알고리즘을 검증하면서 새롭거나 돌발적인 변수를 넣는 것입니다.

 

 


 

 

취향 저격에 성공한 구글 GDN
“직관적 데이터 분석이 고객에게 돌려주는 가치”

 

고객의 취향을 정확하게 분석해 꼭 맞는 광고를 보여주는 구글의 GDN(Google Display Network)은 많은 기업과 브랜드가 모방하는 광고 툴입니다. 이는 인터넷 검색을 할 때 접속 정보를 기억하는 파일인 ‘쿠키’를 추적해 사용자가 인터넷에 검색했던 제품이 광고로 다시 뜨는 형식입니다.

 

 

(사진 = shutterstock)

 

 

구글의 GDN이 매력적인 이유는 ‘방문자를 다른 광고주 사이트로 끌어들여서’만은 아닙니다. 인터넷 사용자의 패턴을 분석해 개인 정보가 없이도 아주 세밀하게 사용자를 분석하고 맞춤 광고를 노출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강점입니다.

고객은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데이터 분석이나 직관이 어디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세세하게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야 할 필요도 없고요. 대신 고객은 속마음을 알아주는 ‘눈치 빠른’ 서비스를 경험합니다. 이처럼 고객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 이면에는 데이터 기반의 고민과 치밀한 설계가 녹아들어 있습니다.

기술 발전으로 제품이나 서비스 수준은 사실상 크게 차이 나지 않고, 소비자 눈에도 대부분 제품들은 비슷비슷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나도 모르는 나의 욕구를 간파한 브랜드에 마음을 엽니다.

고객 맞춤을 넘어 ‘고객 밀착형’ 브랜드와 기업만이 생존하는 시대입니다. 고객 데이터는 그 중요성만큼이나 체계적이고 고도화된 활용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미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고객 데이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조직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경제 불황, 치열한 경쟁이 극에 달해 ‘이제 도대체 무엇으로 더 새롭게 할 것인가’에 대해 모두가 고민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이고 지속적인 수요를 창조하고 전 세계를 놀라게 합니다.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최후까지 살아남는 종은 ‘크고 강한 종’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고객 니즈를 넘어 취향을 간파하면서 끊임없이 변할 수 있는 브랜드, 이런 것을 해내는 기업이 마지막까지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것입니다.



자료출처 : https://brunch.co.kr/@yeonjikim/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