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은 데이터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 데이터를 들여보고 마케팅을 할 때 자주 하는 실수들 3가지
1~2년 전, 제주에서 한 카페 창업 프로젝트에 잠깐 관여했던 적이 있습니다. 마케터 4명이 모여서 준비하게 된 사업이었습니다. 모두 F&B 비즈니스에는 문외한이었지만, 우리는 마케터라는 자신감으로 시작했습니다. 브랜딩이 잘 되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잘 굴러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죠.
나름 마케터 이름표를 달고 있는 사람들인 만큼, 매 회의마다 아이디어가 쏟아졌습니다. 회의가 시작되면 5시간이고 6시간이고 끝날 줄을 몰랐고, 때로는 돌고 도는 논쟁이 계속됐습니다. 우리들은 이 과정들이 모두 ‘멋진 브랜딩’을 위한 성장통이라고 생각했고, 우리들의 의견을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럴듯한 컨셉을 잡고, 메시지를 만들고, 브랜드의 페르소나와 고객들의 페르소나를 그려 보고, 색깔과 로고를 정하고…
그런데 작업을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점점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겉으로 보았을 때는 멋들어진 메시지와 컨셉인데, 도무지 카페에서 나올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는 4명의 이야기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버무리다 보니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누군가의 자서전에나 나올 법한 단어들이 난무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때의 저는 우리의 문제가 메시지를 뾰족하게 깎지 못했던 소통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진짜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의견들에 근거가 없었다는 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데이터라는 단어가 우리들의 일상 속에 너무 깊숙히 들어와 버렸습니다. ‘감’이라는 말은 비즈니스에서 사장된지 오래고, 어떤 직무에도 데이터라는 말이 붙으면 신뢰도가, 더 나아가서는 연봉까지도 급격하게 올라가곤 합니다. 우리는 바야흐로 대 데이터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AI의 급격한 발전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몇몇 사람들은 데이터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거나 호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터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1~2년 전 구글과 애플의 개인정보 보호 조치를 시발점으로 마케터들 사이에서는 한 독특한 인식이 점차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브랜딩 만능주의입니다. ‘퍼포먼스 시대의 종말’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마케팅 본질로의 회귀가 강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마치 데이터를 통한 효율 최적화가 더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경험과 공감, 그리고 ‘감도’를 기반으로 한 브랜딩이 마케팅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조금 자극적으로 이야기하기는 했습니다만 우리가 마케팅을, 더 나아가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데이터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우리는 이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데이터를 활용해야 하는 것이 맞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데이터는 어느 상황에서나 해답을 알려 주는 만능 열쇠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꽤 자주 실수를 합니다. 아래는 우리가 자주 하는 실수들(정확히는 제가 했었던 실수들) 몇 가지입니다.
1. 브랜딩 만능주의, 또는 데이터 만능주의
우리는 가끔, 아니 어쩌면 꽤 자주 숲보다 나무에 집중하곤 합니다. 마케팅이라는 거대한 숲에서도 마치 퍼포먼스와 콘텐츠와 브랜딩이 각각 양립 불가능한 영역인 것처럼 착각하곤 하죠. 머리로는 모든 분야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 통합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케팅의 어떤 한 분야가 유행하면 다른 분야들을 비교적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 지금 내가 집중하고 있는 분야가 마치 가장 중요한 것인 양 생각하게 됩니다.
앞서 언급한 브랜딩 만능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퍼포먼스 마케팅의 효율이 점점 떨어지자 사람들은 퍼포먼스 마케팅의 대체제를 찾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소결론은 브랜딩과 CRM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퍼포먼스 마케팅이 ‘아니라’ 브랜딩이 ‘맞다’. 엄밀히 따지면, 이 생각은 틀렸습니다. 마찬가지로 데이터 만능주의에 빠지게 되면 스토리텔링과 경험적인 맥락을 무시한 채 내가 보는 숫자에만 매몰되게 됩니다. 데이터는 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이지 그 자체가 해답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한 분야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실수를 경계해야 합니다.
2. 도구에 대한 집착
마케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처음 마주치는 난관은 보통 광고를 집행할 때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광고 상품들과 채널이 있고, 각각의 채널에 광고를 집행하는 방법은 모두 다릅니다. 광고 리포트의 형태 또한 가지각색이구요. 그래서 우리는 보통 강의나 스터디를 통해 이 ‘집행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노력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 교육이라는 것은 대부분 광고 채널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설명하고 집행 방법을 시연하는 것입니다. 마치 초등학생에게 카카오 회원가입 방법과 카카오톡 사용 방법을 2시간동안 직접 시연하면서 가르쳐주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당연히 이 교육만 들어서는 광고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데이터 분석을 우리가 처음 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데이터 분석을 처음 접하면 온갖 통계 용어와 생전 처음 듣는 프로그래밍 언어들에 질식당하곤 합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파이썬 문법을 배우고, 코딩의 기초 개념을 배우고, 간단한 단어 퀴즈를 만들면서 실습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파이썬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현란하게 데이터를 다룰 수 있냐구요? 음, 아뇨. 결국 중요한 것은, 도구를 활용하는 방법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와 그를 위해 왜 이 도구를 활용해야 하는지였습니다.
3. 끼워맞추기식 해석
유저가 공감하는 성공적인 마케팅을 위해서는 스토리텔링이 중요합니다. 유저를 설득하기 용이하기도 할 뿐더러, 실제로 내가 생각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더라도 어느 지점에서 변수가 있었는지를 복기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데이터 분석 결과를 토대로 만든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을 위한 데이터 분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건 비즈니스에서 굉장히 치명적인데, 의사결정권자의 판단력을 흐릴 뿐만 아니라 데이터 분석이라는 일 자체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데이터 분석을 시작하려고 하면 굉장히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는 숫자들이 넘쳐납니다. 이 숫자들을 조합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은, 아마 100명이 데이터 분석을 한다면 100가지로 나누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그리고 데이터 드리븐 의사결정을 추구하는 사람은 이 데이터를 단순히 ‘내가 이미 정해둔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도구 조각’으로 생각해서는 굉장히 곤란해집니다.
꼭 데이터 관련 직무나 마케터가 아니더라도 데이터는 모두에게 중요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마케팅 성과를 해석하고 다음 전략을 짤 때, HR 직무라면 리소스를 예측하고 인사 계획을 수립할 때, 영업 직무라면 영업 성과 데이터에서 상관관계를 도출해 이후 영업 전략을 수립할 때, 특히 비즈니스 상단의 전략적인 차원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 데이터는 비즈니스와 불가분의 관계가 됩니다.
계속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내 일에서 한 발 떨어져 넓은 시야로 바라보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데이터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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