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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브랜딩, 닉값과 직업병 사이의 어딘가 - UX 라이팅과 브랜딩


닉값을 하려면

닉네임에 어울리는, 혹은 닉네임스러운 짓을 하는 사람보고 닉값(닉네임 값)을 한다고 합니다. 제빵왕 김탁구가 빵을 기가 막히게 만들면 닉값(제빵왕)을 한다고 볼 수 있는 거죠. 탁구를 못 치면 이름값(김탁구)은 못하는 것이고요. 닉네임에 들어간 행동을 할 수 있냐 없냐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반대로 닉네임을 무엇으로 짓느냐가 중요해집니다. 무슨 삽소리냐고요? 직업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제 일의 정체성을 ‘경험 기획자’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포괄적이지요. 그래서 지금 하는 일은 UX 라이팅, 그중에서도 ‘UX 라이팅 기획’으로 조금 구체화해보고 있습니다. 강의를 나가면 항상 ‘제가 UX 라이터는 아니지만’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쓰는 사람’ 보다는 쓰기 전에 ‘설계하는 사람’이고 싶거든요. 그래서 ‘라이터(writer)’라는 이름은 일부러 쓰지 않는 겁니다. 닉값을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제빵왕이나 반죽왕이나, 닉값을 하려면 빵이 맛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래서 글과 관련된 일을 한다고 하려면 결국은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늘 따라오지요. 심지어 심리학 전공의 글을 다듬는 사람, 닉네임에 에딧(edit)과 쓴(쓰다)가 들어가는 사람이니까요. 어쩔 수 없이 글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닉값을 하려면요.

텍스트로 하는 브랜딩

닉값이라는 단어는 조금 장난스럽지만 실제로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닉값을 조금 진지하게 말하면 브랜딩이거든요. 글을 다루는 사람인만큼 글을 잘 쓰는 것보다 좋은 브랜딩은 없을 겁니다. 네이밍을 해주는 회사 이름이 ‘이름짓긔’이면 신뢰도가 떨어질 테니까요.(쓰고 보니 나쁘지 않을.. 수도..?) 로고 디자인을 해주는 사람이 사용하는 로고가 형편없으면 일을 맡기고 싶지 않을 겁니다. 제가 쓰는 글은 저 스스로에 대한 브랜딩이기도 합니다. 글의 표현적인, 기술적인 영역을 차치하더라도, 글이 주는 느낌과 뉘앙스, 인상 면에 있어서요.

하지만 너무 신경 쓰다 보면 한 글자도 맘 편히 쓸 수가 없어서요. 일단은 ‘읽기 편하게’ 하나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대원칙은 ‘읽기 편하게’ 하나지만, 그에 따른 제 나름의 가이드들이 있거든요. 업계 사람이 아니어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예시만 사용한다거나, ‘-습니다.’와 ‘-해요.’의 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한다거나, 둘을 번갈아 쓰면서 문장의 리듬감을 만든다거나 하는 식이지요. 크몽에서 판매해 보려는 UX 라이팅 기획도 이런 식입니다. 텍스트 한 줄 한 줄을 당장 고치는 것보다, 이런 기준과 가이드들을 세우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텍스트 역시 브랜딩의 일환입니다. 그리고 이건 제 일의 대상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텍스트를 통해 브랜딩이 되는 것은 비단 글을 쓰는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이제는 당근마켓에서 당근이 되었지요

요즘에는 예전만큼 보이지는 않는 것 같은데, 당근마켓 초기에는 “~합니당”이라는 텍스트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당. 백지에 문장 하나만 적어놓고 보아도 당근마켓의 문장이었지요. 브랜드 이름에 있는 ‘당’이라는 글자를 서비스 내 여기저기서 활용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너무 남용하지 않다 보니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했고요.

어김없이 등장하는 ‘그 예시’

솔직히 이 영역에선 토스가 독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요.’라는 중립적인 일반표현을 ‘토스처럼’으로 만들어버렸으니까요. 깃발을 꽂아버린 셈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너도나도 -해요체를 쓰고 있지만, ‘토스처럼 바뀌었네?’로 보일 뿐이지요. 그들 내부에서는 ‘좀 더 쉽고 친근하게 텍스트를 개선해 봅시다.’ 하는 움직임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모두 -해요체로 수렴해버리고 있고요.

50,000원 송금완료(에딧쓴) vs 에딧쓴 님에게 50,000원을 보냈어요.

강의에서 많이 사용하는 예시인데요. 요즘 UX 라이팅 절대원칙(쉽게, 명확하게 등)에 따른다면 왼쪽의 글이 짧고 간결하고 명확합니다. 오른쪽보다 텍스트가 짧지만 모든 정보를 다 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왼쪽의 송금완료는 어느 은행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습니다. 반면 오른쪽의 보냈어요는 스치면서 봐도 토스의 문장 같지요. UX 라이팅에서는 톤과 보이스라고 합니다.

배달의민족에서 ‘지렁이’ 검색 결과. 있을 리가 없지요.

개인적으로는 배달의 민족이나 슬랙도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다만 배민은 이미지의 힘을 받는 부분이 크고, 위트 있긴 하지만 위트 있음과 배민다움의 연결은 다소 약한 것 같아요. 다행히 경쟁자인 다른 배달서비스들이 배민만큼 유머러스함을 표방하지 않아서 배민다움이 유지되고 있다고 봅니다. 어느 순간 유머러스함(위트, 키치, B급 등)을 가져가려는 경쟁자가 나타날지도 모르지요. 그때는 이용자들이 ‘배민처럼 하네?’라고 느낄지, 배민과 구별되지 않을지는 지켜볼만할 것 같습니다.

직장동료가 보내준 카피인데요. 이제 보니 약간 배민스러운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처음 보자마자 ‘여기어때’의 광고배너인 줄 알았어요. 저런 우스꽝스러움은 여기어때의 광고에서 자주 보였던 것 같았거든요. 야놀자는 여전히 ‘초특가 야놀자! 초특가 야야야야야야야 야놀자!♪’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둘 다 유머러스를 표방하다 보니, 문구만 봐서는 어느 브랜드인지 단번에 알아채기가 어렵습니다. 엉뚱하게 배민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네요.

(사용성 측면에서는.. 메인 카피인 [후쿠오카 훑구올까]의 위 아래 붙은 서브카피들이 눈에 걸리네요. 아쉬운 가독성과 중복되는 표현들, 배너 전체가 같은 링크인데 다른 여정을 안내하는 듯한 리드표시(>)가요.)

텍스트를 다루는 직업병

텍스트에 대한 민감도가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글을 보면 괴롭거든요.

이런 지원사업 홍보에서 사람들이 가장 주목하는 정보는 신청자격일 겁니다. ‘그래서, 내가 받을 수 있는 거야?’가 가장 중요하니까요. 우선 신청 자격이 or 조건인지 and 조건인지 명확지 않은 것이 가장 문제라고 봅니다. 1, 2, 3번 중 하나만 해당하면 되는 것인지, 셋 다 해당해야 하는 것인지요. 아마 관련부서는 이 문의전화를 가장 많이 받았을 것 같습니다. 

(모두해당)

네 글자만 더 넣었으면 받지 않아도 될 전화가 10통은 넘게 있었을 거예요. 조금 더 들어가 보면, 각 항목의 위계가 다릅니다. 1번은 ~의 영아(를 가진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영아가 신청하지는 않으니까요. 마찬가지로 2번과 3번은 신청자 본인인지, 본인의 가족인지에 따라 조건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부모(2번)는 서초구에 거주하지 않지만, 조부모(3번)가 서초구에 거주할 경우, 부모가 대신해서 신청할 수 있는지 궁금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 내용은 사실 ‘사용성 중심의 UX 라이팅 기획’을 일로 정의했을 때의 직업병이기도 합니다. 위에서 제 정체성은 UX 라이터가 아니라 경험 기획자라고 했었는데요. 그 관점에서 봐야 아까 다룬 당근과 토스, 배민과 야놀자가 보이거든요. ‘텍스트로 설계하는 브랜드 경험‘의 영역이니까요.

물론 UX 라이팅의 영역에서도 텍스트 브랜딩을 다룹니다. 아까 잠깐 언급한 톤과 보이스라는 이름으로요. 보통은 사용성에 대한 개선이 우선이고, 그 이후 넥스트 스텝으로 이야기되는 영역입니다. UX 라이팅 관점에서는요. 하지만 텍스트를 바꿔보고자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브랜딩이 우선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는 텍스트 브랜딩이라는 이름으로, 브랜딩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브랜드 기획자’로 제 정체성을 갖기에는 브랜드가 너무 크고 넓은 영역이라서요. 브랜딩 중에서도 브랜드 경험, 그중에서도 텍스트로 전달하는 경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정체성과 직업의 관계에 대해서는 지금 집필하고 있는 종이책 원고에서 다뤄보려고 하고 있는데요. 흐름이 정리되지 않아서 머리가 빠개질 것 같습니다. 언젠가 정리가 되면 브런치에서도 가볍게 다뤄보려고요.

어쩌다 보니 요즘 계속 호명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필명을 바꾸려는 고민에 너무 깊게 몰두해있었나 봐요.


자료출처 : 텍스트 브랜딩, 닉값과 직업병 사이의 어딘가 · 위픽레터 (wepic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