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H, 재밌으면 그만일까?
최근 SNS에서 화제가 된 영상이 하나 있습니다. 영상 속에는 거대 전광판에 설치된 갤럭시 워치가 보이고, 리프트에 설치된 거대 손가락이 지나가며 워치의 액정을 스와이프해 다른 화면으로 전환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해당 영상은 삼성 스위스 공식 계정(@samsungswitzerland)을 통해 공개된 갤럭시 워치6의 홍보 콘텐츠입니다. 거대한 스케일에 허구일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SNS에 게시된 해당 영상의 댓글에서도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한 유저는 “분명 실제로 제작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기술력에 놀랍다”고 이야기하는 한편, 또 다른 유저는 “바닥의 그림자가 손가락이 아닌 리프트의 그림자다”라는 근거를 들며 해당 영상이 허구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이들을 궁금하게 한 해당 영상은 아쉽게도 진짜가 아닌 ‘CGI(Computer-Generated Imagery, 컴퓨터로 제작된 화상)’를 활용한 허구의 영상이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광고를 ‘OOH(Out Of Home, 옥외광고)’ 앞에 가짜를 뜻하는 프랑스어인 Faux를 붙여 ‘FOOH’라 일컫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가짜 영상을 만드는 걸까요?
OOH의 새로운 트렌드, FOOH
갤럭시 워치6의 FOOH에 대해 스위스 삼성전자 모바일 부서의 책임자인 ‘파비앙 페르(Fabian Fehr)’는 “이런 가상 OOH를 통해 소비자를 놀라게 만들고, 관심을 유도할 수 있어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장 큰 가치는 사람들의 관심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의 말처럼 현 시대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서는 그들의 관심을 끌만한 요소가 필수적입니다. 이를 위해 일부 유명인이나 브랜드의 경우 부정적인 논란마저 이용하는 ‘노이즈 마케팅’을 활용하기도 하죠.
FOOH는 CGI를 통해 창작자의 창의력을 극대화함으로써 소비자가 놀라고 즐길 수 있는 시각적 콘텐츠를 제공하는 동시에, 놀라운 현실감을 통해 영상의 진위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소비자의 이목을 끄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콘텐츠인 것입니다.
더불어 기승전결의 긴 호흡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도 FOOH의 장점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FOOH는 CGI 기술을 통해 짧은 광고 시간 안에서도 효과적으로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각인시킬 수 있습니다. 이는 현재 주류의 영상 형태인 숏폼에도 부합하기 때문에, FOOH는 트위터, 인스타그램, 틱톡 등 종류를 막론하고 어느 플랫폼에도 별도의 편집 없이 업로드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23년부터 많은 브랜드가 활발하게 FOOH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작년 개봉해 화제가 됐던 영화, ‘바비(Barbie)’를 기억하시나요? 바비도 영화 홍보를 위해 FOOH를 활용해 이슈가 됐던 적이 있습니다.
포장 박스를 찢고 나오는 거대 바비(자료=유튜브)영상 속에는 800m가 넘는 높이를 자랑하는 아랍에미리트(UAE)의 랜드마크, ‘브루즈 할리파(Burj Khalifa)’ 앞으로 브루즈 할리파의 크기에 맞먹는 거대 바비 인형이 포장지를 찢고 나와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비 인형은 영화 속 바비 역을 맡은 ‘마고 로비(Margot Robbie)’가 입고 있는 의상과 같은 의상을 입고 있죠.
거대 바비 FOOH도 비현실적인 스케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인지 의심되는 현실감에 X(옛 트위터)에서 50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하는 등, 영화 바비 홍보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해당 영상을 제작한 UAE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인 ‘아이 스튜디오(Eye Studio)’의 공동 창립자 ‘주히 루파니(Juhi Rupani)’는 “많은 사람들이 거대 바비가 진짜인지,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를 묻는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FOOH의 높은 마케팅 효과로 인해 현재 많은 광고대행사가 공격적으로 CGI 아티스트 영입에 나서고 있는 등, FOOH를 통해 소비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현실감, FOOH의 장점인 동시에 문제점
OOH 필드에서 세계적인 트렌드가 된 FOOH는 사실 기업이 아닌 한 개인 아티스트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이안 패드햄(Ian Padgham)’은 디지털 아티스트이자 프로덕션 회사인 ‘오리지풀(Origiful)’의 대표인데요. 그가 작년 업로드한 ‘보르도의 와인 기차(Bordeaux Metro)’라는 영상 콘텐츠가 바로 FOOH의 시작점이었습니다.
FOOH의 시작점이 된 보르도의 와인 기차(자료=유튜브)보르도의 와인 기차는 파리 시내를 누비는 와인 모양을 한 기차의 모습을 담은 콘텐츠입니다. 그는 해당 영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와인 모양으로 된 기차를 실제로 보기 위해 파리를 방문하는 등 오해가 생기자 해당 영상이 허구임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FOOH의 가능성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러나 FOOH의 화제성에 묻혀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FOOH의 본질이 허구에 있다는 점입니다. 앞서 이안 패드햄은 자신의 콘텐츠를 현실로 착각해 파리를 방문한 사람들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안 패드햄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CGI가 현실적이었다는 반증이었겠지만, 파리를 찾은 방문객의 입장에서는 속았다고 느끼지 않았을까요?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지난해 가을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스파이더맨2(Spider-man2)’는 전세계 게이머를 사로잡았습니다. 게임의 제작사인 동시에 플레이스테이션을 판매하는 ‘소니(Sony)’는 해당 게임을 홍보하기 위해 FOOH를 포함해 다양하고 재밌는 마케팅을 선보였습니다.
스파이더맨 게임 홍보 트레일러와 함께 거미줄에 묶여 있는 트럭(자료=유튜브)그 중에는 파리의 개선문에 거미줄로 꽁꽁 묶인 트럭의 모습을 담은 영상도 있습니다. 트럭의 트레일러에는 스파이더맨 게임을 홍보하기 위한 이미지가 입혀져 있죠. 아마 FOOH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해당 콘텐츠가 가짜이지 않을까 의심했을 것이고, FOOH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해당 콘텐츠가 진짜인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이번엔 거미줄에 쌓인 또 다른 트럭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고, 조금 전처럼 스파이더맨 게임 이미지가 입혀진 트럭이 거미줄에 묶여 있습니다. 앞으로 날아가는 트럭을 거미줄로 붙잡은 듯한 생동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어떨까요. FOOH로 만들어진 허구일까요, 아니면 정말 어딘가에 설치된 조형물일까요?
사실 두 콘텐츠 중 하나는 진짜, 하나는 FOOH로 만들어진 가짜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어느 콘텐츠가 진짜인지 찾을 수 있나요? 정답부터 이야기하자면, 진짜는 후자의 이미지입니다. 개선문에 거미줄로 묶인 트럭은 FOOH로 만들어진 가짜, 후자의 이미지는 실제로 시드니에 설치된 조형물입니다.
이처럼 FOOH의 맹점은 현실에 조형물, 팝업스토어 등 FOOH를 진짜로 혼동할 만한 콘텐츠가 존재한다는 데 있습니다. FOOH의 콘텐츠가 현실적일수록, 그 규모가 작을수록 더욱 분간하기 어려워지고, 소비자가 혼란에 빠질 가능성도 커집니다.
메이블린 마스카라 홍보를 위해 제작된 FOOH(자료=유튜브)실제로 FOOH에 대한 의견을 묻는 한 외신 기사에서는 화장품 브랜드인 ‘메이블린(Maybelline)’의 마스카라 홍보를 위해 고무 속눈썹을 덧붙인 지하철의 모습을 담은 FOOH 콘텐츠를 보고 “실제로 런던에 방문한 김에 지하철에 설치된 고무 속눈썹을 보기 위해 찾아다녔지만, 해당 영상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실망했던 적이 있다”는 의견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광고의 근본을 잊지 말아야
FOOH로 제작된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의 마스코트 뭉초(자료=유튜브)FOOH 콘텐츠를 보고 이를 실제로 오인해 헛걸음을 하는 사례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내도 예외는 아닌데요.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을 앞두고 강릉시와 대회 조직위원회는 귀여운 대회 마스코트인 ‘뭉초’를 공개했습니다.
그러나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경포해변, KTX 강릉역 등 도시 곳곳에서 대회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의 조형물을 찾을 수 있어 도시를 방문한 관광객을 만족시키는 인기 포토존의 역할을 했던 것과는 달리, 도시 그 어디에서도 뭉초의 조형물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강릉시와 대회 조직위원회가 실제로 설치한 뭉초의 조형물은 단 2개에 그쳤으며, “경포해변에 뭉초가 있다”는 이야기와는 달리 경포해변에서도 뭉초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강릉시와 대회 조직위원회가 이야기한 경포해변의 뭉초는 사실 FOOH로 제작된 가상 조형물입니다. 결국 오는 19일 대회를 앞두고 강릉을 방문한 수많은 선수단 관계자와 관람객들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계속해서 FOOH를 실제로 오인하는 현상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사실 꽤 간단합니다. 바로 영상 어디에도 CGI로 제작된 허구라고 명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FOOH가 소비자를 사로잡는 포인트가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듯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딘가 존재할 듯 느껴지는 현실감에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의도적으로 소비자에게 영상이 허구임을 감추는 것이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메칸 런던(McCann London)’의 최고 전략 책임자인 ‘멜 에로우(Mel Arrow)’는 ‘캠페인(Campaign)’과의 인터뷰에서 FOOH에 대해 “FOOH가 주는 즐거움과 잠재력은 인정한다”면서도, “광고의 규칙은 진실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 산업은 소비자 신뢰의 편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광고 산업의 핵심은 진실에 기반한 데 있습니다. 오랫동안 광고 업계가 허위, 과장 광고와 싸워온 이유는 거짓을 진실처럼 이야기하는 일의 대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뢰는 한번의 마케팅 기회를 위해 소비하기에는 너무 큰 대가인 것입니다.
실제로 세계적인 에너지 음료 브랜드인 ‘레드불(Red Bull)’의 경우 2014년 자사의 음료가 반응 속도 향상 등의 효과를 제공한다고 광고했고, 해당 광고로 인해 “허위 광고로 소비자가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을 지불하도록 설득했다”는 내용의 집단 소송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레드불은 결국 1300만 달러에 달하는 합의금을 지불해야 했죠.
레드불은 여전히 가장 유명한 에너지 음료 브랜드지만, 해당 사건은 마케팅에 있어 투명성은 물론, 마케팅의 메시지가 브랜드의 평판과 소비자의 신뢰에 미칠 잠재적 영향을 신중하게 고민할 것을 상기시키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됐습니다.
재미와 책임감, 어디에 무게를 둘 것인가
물론 FOOH가 소비자를 즐겁게 해주고, 창작자의 창의력을 마음껏 표현하게 해줄 수 있는 콘텐츠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AI로 제작된 가짜 뉴스’ 등 기술의 발전으로 콘텐츠, 뉴스 등의 진위 파악이 점차 어려워져 곤란함을 겪고 있는 현재, 허위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마냥 옳다고 볼 수 있을지는 고민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재미와 효율, 그리고 진실성과 책임감을 올려놓고 움직이는 시소를 두고 우리는 어느 쪽에 무게를 둘지 깊게 고민해야 합니다.
자료출처 : FOOH, 재밌으면 그만일까? - DIGITAL iNSIGHT 디지털 인사이트 (di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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