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작년에 드디어 연간 기준 첫 흑자를 기록한 에이블리였지만, 올해 주어진 과제들은 결코 녹록지 않았습니다. 에이블리의 핵심 경쟁력은 동대문 기반 패션 상품, 그리고 이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콘텐츠 생산 역량이었는데요. 중국 커머스의 진출과 더불어, 이러한 기반들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쉬인의 경우, 여러모로 에이블리의 상위 호환이라 볼 수 있었거든요. 그렇기에 이들마저 국내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한다면, 어떻게 이를 대처할지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았을 건데요. 이렇듯 위기에 처한 에이블리에게 알리바바의 투자 유치 및 전략적 제휴 관계 구축은 어쩌면 내심 바라왔던 일일수도 있는 거죠.
이것은 알리바바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둘은 상당히 잘 어울리는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선, 알리바바는 초저가 의류와 글로벌 물류 인프라라는 강력한 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저렴하게 상품을 구매하여 공급할 능력이 충분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제품을 잘 팔면 되는데, 에이블리가 바로 그런 역량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상품의 구매부터 배송, 고객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에이블리가 담당하며, 동대문 패션 시장의 진입 장벽을 낮췄고요. 이렇게 모은 인풀루언서들에게 판매를 맡겨 큰 성공을 거둔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에이블리의 히트작, 에이블리 파트너스입니다.
다만 문제는 에이블리가 이렇게 중국 커머스의 손을 잡는다면, 동대문 생태계의 미래는 더욱 어두워질 거라는 점입니다.작년 하반기부터 동대문 풀필먼트 서비스들이 차례로 무너지며, 에이블리는 최후의 보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그래서 이번 투자 유치와 관련하여, 에이블리의 한 관계자는 "K셀러의 해외 진출을 통해 동대문 생태계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면밀하게 투자 유치를 검토 중"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내부적으로도 어느 정도 부담은 분명히 있을 거라는 거죠.
에이블리는 동대문에서 만들어진 상품을 사입하여 판매할 뿐 재고를 보유한 곳이 아닙니다. 심지어 동대문에서 유통되는 의류 역시 최소 50% 이상은 중국에서 수입된 걸로 추정되고요. 그렇기에 이미 브랜디는 중국 광저우 기반 쇼핑 플랫폼 VVIC닷컴과 자체 풀필먼트 서비스, 셀피에서 중국 도매 상품들을 사입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 왔습니다. 이어서 작년 10월에는 아예 이를 직접 소비자가 살 수 있도록 해외 직구 카테고리를 론칭하기도 했고요.
그렇기에 에이블리에게도 국내 상품을 알리바바를 통해 판매하기보다는, 알리바바의 상품을 곧바로 에이블리 파트너스에 붙이는 것이 더 득이 되는 선택일 겁니다. 다만 그렇게 되면, 동대문의 존재 가치는 더욱 없어지게 될 거고요. 그렇다고 동대문 전체 생태계를 생각해 알리바바가 내민 손을 거절하기엔, 에이블리의 상황이 그리 좋지많은 못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딜레마에서 에이블리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 걸까요?
여기서 확실한 건, 에이블리가 롱런하려면, 단지 잘 파는 능력을 넘어선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쿠팡이 증명했듯이, 단순한 판매 중개 모델은 아무리, 콘텐츠 역량이 탁월하더라도 오래갈 수 없습니다. 물류든 제조든 실체적인 무언가를 반드시 쥐어야만 하는데요. 그러기 위해선 결국 동대문이 에이블리에게도 필요합니다. 따라서 어렵지만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만 하고요. 이는 에이블리 혼자 할 순 없는 일이기에, 이번 위기를 계기로 동대문 생태계 전체에 오히려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