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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브랜드가 고객과 더 빠르게 친해지는 방법


어떻게 하면 반려견과 함께 걸어가는 고객을 잠깐이라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한창 이런 고민을 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매년 코엑스, 킨텍스 등의 대형 전시장에서는 반려동물을 위한 전시회가 열립니다. 이름은 전시회지만 사실상 거대한 쇼핑 축제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3일 간 대략 2만여 명의 반려인들이 다양한 브랜드와 제품을 구경하기 위해 이곳에 방문합니다. 브랜드들은 방문한 고객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온라인보다 더 저렴한 가격, 풍성한 이벤트를 준비해 참여하죠. 

저희 고객사 중 한 곳도 전시회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반려동물용 소형 가전을 만드는 브랜드였죠.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 브랜드라 큰 부스를 잡지는 못했습니다. 오프라인에 쓸 수 있는 예산도 그리 넉넉하지 않았고요. 플랜브로의 역할은 주로 디지털 마케팅 쪽이지만, 저는 이 오프라인 기회를 적극 활용하고 싶었습니다. 쟁쟁한 브랜드들 사이에서 효과적으로 고객들의 발걸음을 멈출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마침 그 박람회는 반려동물과의 동반 입장이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객사에게 보호자가 아니라 ‘반려동물’을 먼저 멈추게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반려견이 멈추면 보호자도 멈춥니다

일단 고객과의 벽을 만드는 테이블들을 다 치웠습니다. 부스 테두리를 둘러싸는 전형적인 테이블 배치가 오히려 고객을 만날 기회를 막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대신 반려견들이 지나다니는 통로와 가까운 곳 바닥에 베스트셀링 제품인 ‘반려동물 정수기’를 여러 대 배치했습니다. 고객 눈높이에 있는 배너에는 ‘힘드시죠? 반려견과 시원한 물 한 잔 하고 가세요!’라는 카피를 달아두고 보호자용 생수도 따로 준비했습니다. 

테이블을 치우니 부스 안쪽이 훨씬 더 잘 보였습니다. 이곳에 반려동물의 털을 정리해 주는 그루밍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털을 밀면 쓰윽 빨아들이는 시각적 퍼포먼스가 좋은 제품이기 때문에 고객이 직접 성능을 확인해 볼 수 있도록 털이 긴 카펫(=반려동물 대역)도 다수 준비했죠. 가장 안쪽 벽면에는 이후에 출시할 후속 제품들을 전시하고 간단한 소개를 덧붙여두었습니다. 

전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사람도 반려견도 걷다 보면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반려동물들이 부스 앞에서 멈춰 열심히 정수기 물을 마셔줬습니다. 반려동물이 멈추니 보호자들도 멈춰 정수기에 대한 핵심 차별화 포인트를 읽어보게 됐습니다. 그때쯤 직원들이 나서 생수를 권하며 ‘잠깐 들어오셔서 구경해 보세요’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가볍게 카펫의 털을 밀어보거나, 함께 방문한 반려견의 발바닥 털을 직접 정리해 보거나, 시원하게 털을 빗질을 해줄 수 있도록 그루밍 제품의 사용법도 친절히 알려드렸죠. 

가격대가 있는 제품이라 당장의 구매를 강하게 권하지는 않았습니다. 고객이 직접 제품을 체험하게 만들고, 우리의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인스타그램 팔로우와 스토어 찜을 적극 유도했죠. 

구매를 강하게 권하지 않았음에도 부스에 방문한 분들 중 약 3%가 그 자리에서 제품을 구매했습니다. 스토어 찜,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두 배로 늘었습니다. 전시회 이후 진행된 온라인 프로모션에서는 평소보다 매출이 150% 이상 올랐습니다. 대형 브랜드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미약한 수준의 성과지만, 참가비 외의 비용은 거의 쓰지 않은 초기 브랜드로서는 충분히 만족할만한 성과였습니다. 

퓨리나가 길거리로 나간 이유

자본력이 있는 브랜드들은 고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큰 비용을 써서 거리로 나가기도 합니다. 고객에게 하고 싶은 말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고객을 직접 대면할 수 있는 현장으로 나가는 거죠.  

기능성 사료로 유명한 글로벌 브랜드 퓨리나도 고객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1년에 약 100만 마리의 반려견들이 매년 받아야 할 건강검진을 건너뛰고 있었습니다. 퓨리나는 프랑스의 보호자들에게 반려견 건강검진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이에 특별한 광고판을 제작해 산책 인구가 많은 거리 곳곳에 설치하기 시작했죠. 

GNIcf8E2agiCdjEMOIrqFucYhTw.JPG퓨리나가 특수 제작한 광고판 (출처 : 퓨리나 유튜브 캡처)

이 광고판은 반려견이 소변을 보고 싶게 만드는 페로몬을 내뿜습니다. 반려견이 자연스럽게 광고판 기둥에 소변을 보면 내장된 기기가 소변을 분석해 건강 검진을 30초 만에 끝냅니다. 디스플레이에서는 반려견의 건강 검진 결과에 맞는 퓨리나의 제품들이 추천됩니다. 반려견 건강에 이상이 있어 더 전문적인 검진이 필요할 경우 보호자에게 이를 알려주고, 수의사에게 제출할 데이터를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3주 간 총 2,500여 마리의 반려동물 건강검진이 진행됐고, 겉으로는 건강해 보이는 약 1,000여 마리의 반려견에게서 크고 작은 건강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프랑스의 보호자들은 건강 검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습니다. 퓨리나는 고객들에게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반려동물 건강에 있어 전문성이 있는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 것은 물론이고요. 

고객은 오프라인에도 있습니다

저희 집 앞 호수공원에만 나가도 수많은 보호자들이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즐기고 있습니다. 개를 좋아하지만 키우지는 못하고 있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다양한 종의 귀여운 강아지들을 구경할 수 있는 행복한 장소죠. 어쩌면 규모가 작은 반려동물 브랜드 마케터에게도 이곳은 잠재 고객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최적의 장소 중 하나이지 않을까요?  

아파트와 오피스텔로 둘러싸인 신도시의 공원은 이미 ‘타깃팅’이 되어있는 장소입니다. 디지털 매체의 타깃팅 기능이 필요가 없죠. 반려견을 데리고 공원에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그 지역에 사는 반려견 보호자이기 때문에 처음 보는 고객이라도 ‘사는 지역 + 반려동물 유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산책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우리 브랜드를 기억하게 만들 방법만 떠올리면 되죠. 

당연히 퓨리나처럼 돈이 많이 드는 첨단 장비를 제작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브랜드가 가진 핵심 역량을 잘 고민해 보면 산책 중인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있습니다. 반려견 유산균이나 장 영양제 등을 판매하는 브랜드라면 배변봉투를 버릴 수 있는 쓰레기통을 독특한 디자인으로 제작해 ‘반려견의 쾌변’이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겁니다. 반려동물 정수기를 판매하는 브랜드라면 무더운 여름 시원한 물을 마시며 잠시 쉴 수 있는 임시 쉼터를 운영해 ‘힘이 나게 해주는 맛있는 물’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죠.

뭔가를 설치하는 것이 부담된다면 산책 시 고객들이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용품(배변봉투, 물컵 등)을 브랜드만의 아이디어를 적용해 만들어 나눠줄 수도 있습니다. 일부 아이디어는 공원을 운영하는 기관과의 협의가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시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기획을 한다면 기관도 무조건적인 반대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처럼 경쟁이 치열한 디지털 공간에서만 브랜드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반려동물 브랜드뿐 아니라 어떤 카테고리의 브랜드도 결국 마케팅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같습니다. 고객에게 브랜드의 생각을 전하고, 말을 걸고, 친근한 관계를 맺고,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죠. 

고객은 디지털 공간에도 있지만 오프라인 공간에도 있습니다. 우리의 경쟁자는 디지털 공간에 훨씬 더 많죠. 고객들에게 좀 더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우리 잠재고객이 있을만한 곳에 나가 그들을 관찰하거나 직접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경쟁자들보다 훨씬 더 빠르게 고객들과 친해질 수 있는 아이디어가 문득 떠오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자료출처 : 작은 브랜드가 고객과 더 빠르게 친해지는 방법 · 위픽레터 (wepic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