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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을 협박하는 문장


예전에 썼던 글에서, 강릉의 한 빙수집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매장 여기저기에 창문을 열지 마라, 빙수가 나오면 빨리 가져가라, 문을 꼭 닫아라, 쓰레기를 남기지 마라 등, 빨간 글씨의 경고문이 덕지덕지 붙어있었어요. 경고문이라기보단 안내문이었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주의사항’이 한가득 붙어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최근에 다시 방문했는데, 대부분 없어졌더라고요. 10장 중에 2장 정도만 남은 느낌이었습니다. 브런치 변두리의 제 글을 보신 것 같지는 않았는데, 매장 리뷰 중에 같은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더라고요. “주의해야 할 게 너무 많아 마음이 불편하다”면서요. 그 리뷰를 보고 안내문을 없앤 건지, 사장님의 심경변화였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때 주의사항을 붙여야 했던 이유들이 해결되어서(손님들이 알아서 창문을 닫고 문도 닫고 쓰레기도 정리하게 되어서) 떼어 버리신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경고문을 읽는 사람의 관점

지난 주말에 집무실(공유오피스) 3일 체험을 이용해 봤는데요. 처음이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저런 안내사항들을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인테리어가 제 취향이더라고요. 안내문도 과하지 않고요. 주로 이용방법에 해당하는 ‘해야 할 것’ 혹은 ‘할 수 있는 것’은 오피스 공간에 붙어 있었고, ‘하면 안 되는 것’은 어플을 통해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공간을 이용하면서 눈치를 봐야 할 필요는 없었지요.

어느 서비스를 이용하나, ‘하면 안 되는 것’에 해당하는 행동들이 있습니다. 집무실에서는 다른 사람의 입장권(QR코드)을 이용한 부정출입, 짐만 두고 자리를 비우는 자리점유가 있었고요. 이용객 모두가 준법정신이 투철하고 매너까지 갖추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지만, 몇몇의 무신경한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때 제공자(서비스, 사장님, 기획자)는 본의 아니게 사용자에게 경고를 하게 됩니다. 집무실의 경고는 ‘부정 출입이 적발될 경우 (조금 비싼) 이용료가 청구됩니다.’라거나, ‘점유가 발각되면 점유시간만큼 이용요금을 받겠다.’는 식이었지요. 사실 이 정도는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잘못을 안 하면 그만이니까요.

문제는 이런 경고문들까지 찾아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블랙 고객이 아닐 확률이 크다는 점입니다. 서비스 운영의 리스크에 해당하는 블랙 고객들은 애당초 경고문을 주의 깊게 읽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대부분의 경고문들은 착실하고 조심스러운 매너 고객에게 도달합니다.

제가 UX라이팅 의뢰를 받아 작업했던 서비스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 서비스가 경고를 해야 하는 블랙 고객의 진상짓은 자칫하면 형사 처벌이 가능한 정도의 건이었기 때문에, 초안으로 전달 주신 경고문도 꽤 강력한 경고를 하고 있었지요. 구체적인 브랜드는 밝힐 수 없지만, 대강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형사법에 저촉되는 범죄행위이므로, 적발 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무섭더라고요. 제가 그런 짓을 했던 사람이라면 꽤 무서웠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라면 이런 경고문을 주의 깊게 읽지 않을 것 같아서 문제였지요. 사실 보더라도 크게 겁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게 무서운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그런 행위를 하지도 않았을 것 같아서요.

제안은 이렇게 드렸습니다.

최근 OOO 한 비매너 행위가 적발되어 형사처벌 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불편을 겪은 이용자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 전해드립니다. 모니터링을 강화하여, 불편을 드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경고문구를 읽는 사람들은 대다수의 선량한 피해자일 것이라는 전제로, 그들의 관점에서 작성한 문장입니다. 선량한 이용객에게는 브랜드가 블랙 컨슈머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인상을, 블랙 컨슈머들에게는 본인의 비매너 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일 수 있으며, 적발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는(모니터링을 철저히 하고 있다는) 무언의 경고를 전달하려고 했어요.

같은 의미의 문장이더라도 읽는 사람을 고려하여 다른 어감으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읽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의 관점에서 이 글이 어떻게 읽히는지도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경고문이야 당연히 경고를 받을 사람이 읽겠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경고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저 문장을 읽는 전체 모수에 비하면 극히 일부일 확률이 높으니까요. 적은 수의 사람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서, 다수의 사람에게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글을 읽는 대부분이 경고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맞다면, 그건 경고 문구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스템 자체의 문제입니다. 이용자 대부분이 서비스를 잘못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 되니까요.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경고하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곳마다 쓰레기통을 배치하는 것이 더 나은 해결책이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