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에서 단순함은 최선이 아니다.
“Only truly iconic brands can say less”
단순함은 아이코닉한 브랜드의 특권이다.
– Nils Leonard, co-founder at Uncommon
01.
단순함으로 차별화된 브랜드 가치를 만들 수 있을까?
단순함은 모든 브랜드가 지닌 보편적 성질일 뿐 그 자체로 이상적 가치가 되기 어렵다.
‘Simple is the best’ 혹은 ‘Less is more’라는 말은 하나의 격언으로 자리 잡았다. 단순함의 가치에 대한 찬양은 이미 넘쳐난다. 스티브 잡스와 피카소가 말했듯 탁월한 경험은 불필요한 것을 단순화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또한 비즈니스에 있어 단순함은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경쟁력을 높인다. 하지만 브랜딩의 과정에 단순함을 적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단순함이란 인간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보편적 가치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브랜드가 단순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보편성에 머문다는 의미와 같다. 특히 차별성이 요구되는 브랜드 자산에 단순함을 적용하는 행위는 경계되어야 한다. 단순함은 브랜드 개념이 생긴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브랜드가 사용한 가장 기초적인 표현법이다.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브랜드에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많지 않다. 한정된 예산과 인력으로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브랜드가 선택하는 가장 효과적인 접근방식이 바로 단순함이다. 하지만 보편성을 만드는 단순함을 브랜드 자산에 적용하는 것은 브랜딩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다. 브랜드 경험이 풍부한 이 시대에 단순함을 미덕으로 삼는 경우, 보편성과 유사성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프라다는 럭셔리 브랜드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복잡한 왕가 문양을 자산으로 사용했다. ©PRADA
브랜드 자산의 가치가 높은 브랜드에는 남들과 구별되는 상징적 이미지가 있다. 이를테면 프라다의 역삼각형 로고가 그렇다. 프라다의 로고에는 ‘PRADA MILANO DAL 1913’라는 문구와 이탈리아 왕가인 사보이 가문의 엠블럼이 새겨져 있다. 단순 브랜드 이름과 설립 연도, 지명을 새기는 것으로도 부족해 이탈리아 왕가의 문양까지 사용한 것은 럭셔리 브랜드가 지녀야 할 품질과 장인 정신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이다. 이는 무수한 패션 브랜드 가운데 자신만의 고유함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이다. 카테고리 내 경쟁사 대비 차별화된 가치를 강조해야 하는 신생 브랜드는 사소한 브랜드 자산에도 고유한 가치를 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차별성을 지닌 훌륭한 브랜드 자산에는 세심한 고민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반면 단순함이란 초보자들을 위한 접근이다. 디자인이든 슬로건이든 하나의 브랜드 자산을 만드는 데 있어 단순함처럼 쉬운 접근은 없다. 숙련된 경험이 없더라도, 심지어는 10살 학생이라도 단순한 형태의 디자인과 간결한 단어로 구성된 슬로건을 개발할 수 있다. 이를테면 숙련된 소설가와 어린 학생이 단 두 단어로 구성된 슬로건을 만들 경우 수준의 차이를 실감하기 어렵다. ‘적을수록 좋다(Less is more)’는 격언 역시 이런 맥락에서 유효하다. 반면 한 권의 책을 썼을 경우, 어휘력에서 사건의 개연성, 문장 간의 맥락, 사고력, 현상에 대한 통찰력 등 모든 면에서 현격한 수준 차이가 돋보인다. 초보자에게 단순함은 말 그대로 간단한 고민의 결과일 수 있겠지만, 최고 수준의 전문가에게 단순함은 디테일한 고민과 무수한 경험의 총합에 가깝다. 브랜딩은 장편 소설과 같은 하나의 완결성 높은 맥락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탁월한 브랜드 자산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함보다, 사소한 요소조차 브랜드의 맥락 안에서 정교화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런 능력이 표현의 단순함을 넘어서는 아이코닉한 브랜드 자산을 만든다.
마침내 아이코닉한 브랜드 자산을 구축한 프라다. ©PRADA
02.
단순함은 아이코닉한 브랜드의 특권이다.
브랜드에 필요한 단순함이란 아이코닉함이다.
최근 프라다는 기존의 복잡한 문구와 문양을 모두 덜어내고 역삼각형을 단독으로 사용하는 신규 로고는 발표했다. 이를 보고 훌륭한 브랜드 자산에 필요한 미덕이 단순함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심플한 디자인이라던가, 간결한 표현 자체는 브랜드에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문제는 상징성이다. 과연 브랜드 자산으로서 상징성을 획득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다만 상징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단순함이 필요한 경우가 있을 뿐이다.
만일 프라다가 처음부터 단순한 로고를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차별화는 물론이고 상표 출원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이미 유사한 형태의 상표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프라다는 어떻게 차별성 없는 역삼각형으로 브랜드를 떠올리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1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속에서 형성된 브랜드 정체성과 헤리티지, 내러티브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브랜드가 축적해 온 풍부한 자산으로 인해 역삼각형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프라다의 아이콘이 되었다. 만약 프라다가 이러한 맥락 없이 심플한 디자인 자산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소비자의 공감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 줄의 카피는 물론 로고까지 덜어낸 영국항공의 옥외광고는 브랜드가 전하는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전한다. ©British Airways
단순함의 가치는 아이코닉한 브랜드를 통해 극대화 된다. 세계 최고의 광고 대행사로 꼽히는 언커먼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Uncommon Creative Studio)가 영국항공(British Airways)을 위해 진행한 옥외광고 ‘윈도우즈(Windows)’는 단순한 표현으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선보였다.
영국항공의 옥외광고에서는 광고 카피는 물론 브랜드 로고조차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 광고에서 주인공이 되는 것은 비행기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구경하는 여행자의 얼굴이다. 여행자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설렘과 즐거움이 브랜드가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가치를 대변한다. 광고를 접한 사람은 누구든 명확한 브랜드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구구절절한 설명이나 화려한 수사를 사용하지 않아도 선명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힘. 이것이 바로 아이코닉한 브랜드가 지닌 힘이다.
광고를 대행한 디렉터는 이런 접근법을 아이코닉한 브랜드의 특권이라고 고백한다. ©British Airways
모든 브랜드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는 단순함이 아닌 아이코닉함이다. 영국항공의 광고 캠페인을 대행한 언커먼의 공동창립자, 닐스 레너드(Nils Leonard)는 이런 단순함을 아이코닉한 브랜드만이 가능한 표현이라고 고백한다. 아이코닉한 브랜드가 전하는 침묵의 메시지는 더 강한 울림을 준다. 2017년 내가 브랜딩에 필요한 침묵의 미학이라는 글에서 밝혔듯, 이 시대의 갈증은 경탄이나 흥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침묵의 경험이다. 안도 다다오나 하라 켄야와 같은 이들도 침묵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단순히 표현의 간결함이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가 고유한 상징성을 획득하기까지의 과정이다.
단순함과 침묵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단순함만으로 브랜드를 차별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침묵으로 브랜드 메시지를 전하기는 어렵다. 하나의 브랜드가 고유한 이미지를 획득하기까지는 단순화의 노력이 아니라 사소한 브랜드 자산에도 완결성 높은 맥락을 부여하는 세심한 노력과 치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과 경험이 축적되어야 비로소 단순한 자산으로 브랜드의 상징성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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