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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가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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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이라 쓰고, 포기라고 읽습니다

롯데가 롯데온을 중심으로 추진하던 온라인 통합 전략을 수정한다고 합니다. 그간 백화점, 대형마트 등의 전사 이커머스 사업을 롯데온이 모두 맡아 전담했다면, 앞으로는 계열사 별로 각기 각자도생에 나선다는 건데요. 이에 따라 11번가 인수 역시 검토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합니다.

비록 기사에서는 전략 수정이라 표현되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는 앞으로 롯데가 이커머스 시장 내 주도권을 쥐는 것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리테일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규모의 경제인데요. 통합 플랫폼 운영과 오픈마켓 확장 없이, 경쟁사와 견줄만한 거래액 규모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즉 앞으로 롯데가 이커머스 시장 선두에 자리 잡은, 쿠팡, 네이버, SSG와의 전면적으로 경쟁하는 일을 없을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롯데가 온라인 쇼핑을 완전히 포기하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계열사 별로 버티컬 전략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다곤 하는데요. 적어도 한때 유통 공룡이라고 불리던 롯데에겐 꽤나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패스트팔로워 전략이 문제였습니다

롯데가 이렇게나 이커머스 시장에서 뒤처지게 된 건, 기존의 패스트팔로워 전략을 고수하며, 골든타임을 놓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전부터 롯데는 경쟁사 신세계를 따라 하는 패스트팔로워 전략으로 재미를 보곤 했습니다. 롯데는 경쟁자, 특히 신세계가 신사업을 시작하면 그 가능성을 보고, 따라붙으며 안정적으로 성장해 왔던 건데요. 이로 인해 이마트에게 대형마트 1위를 내주는 등, 일부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안정적인 채널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롯데몰이라는 복합 쇼핑몰 사업은 가장 먼저 선보일 수 있었고요. 아이러니하게도 롯데몰은 후발주자였던 신세계의 스타필드에게 밀리긴 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온라인은 다르다는 걸, 롯데는 알아야 했습니다. 기존에 가진 자원을 통해 손쉽게 확장을 하며 빠르게 추격할 수 있었던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에서 롯데의 역량은 경쟁자 대비 너무나도 부족했습니다. 내부에선, 국내 최초 온라인 몰을 만들었던 업력과 경험을 믿었던 것 같은데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트래픽, 물류 인프라, 개발 인력 등 그 어느 것도 롯데가 기댈 구석이 없었습니다. 스스로를 냉정하게 평가하지 못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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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요? 롯데는 투자에도 인색했습니다. 신세계가 막대한 자본을 들여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를 짓고,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할 때, 롯데는 지갑을 여는 것을 망설였습니다. 물론 신세계가 오버페이 했다는 지적도 있고, 현재 실적 역시 좋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신세계는 온라인에서도 3위의 자리는 지키고 있기에 미래를 향한 희망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고 현대백화점처럼 실속 있는 투자를 한 것도 아닙니다. 현대백화점은 한섬, 리바트, 지누스 등을 연이어 인수하며 강력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거느리고 있는데요. 롯데는 한샘을 품었지만, 그마저도 타이밍이 늦어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롯데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휩싸이기도 하는 등, 추가적인 투자 동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는데요. 비록 이미 많이 늦긴 했지만, 롯데온이 정말 온라인에서 승부를 보려 했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이조차도 허무하게 놓치고 만 겁니다. 더 이상 롯데에겐 대규모 인수나 물류 인프라 투자를 할만한 여유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거고요.

과거의 명성을 되찾긴 어렵겠지만...

근래 들어, 언론에서 이마롯쿠라는 단어로 국내 유통 시장의 경쟁 상황을 설명하는 일이 많아졌는데요. 이마롯쿠는, 이마트, 롯데쇼핑, 그리고 쿠팡을 뜻합니다. 국내 유통 시장에서 신세계 그룹은 5.1%, 쿠팡은 4.4%, 롯데는 2.5%를 각각 점유한다고 하고요. 하지만 이제 앞으로 '이마쿠'와 '롯'의 차이는 더욱 벌어질 겁니다. 이에 따라 롯데는 국내 유통기업 중 정상의 자리를 다시 되찾기는커녕 빅 3의 입지마저 지키기 어려울 거고요.

물론 각자도생에 나선 개별 계열사들의 실적은 호전되고 있다는 점은 롯데에겐 다행인 일입니다. 지난 1분기 기준으로 롯데쇼핑의 이익은 완연한 회복세에 접어들었고요. 롯데하이마트도 3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여전히 롯데의 저력은 남아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롯데가 오히려 이번 위기를 토대로, 대대적인 혁신에 나선다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봅니다. 신세계 그룹의 과감한 수는 분명 의미 있지만, 그만큼 리스크가 크기도 합니다. 또한 덩치가 커지면 커질수록 변화엔 둔할 수밖에 없고요. 반면에 롯데는 최근 과감한 변화를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천공항을 포기하고 시내 면세점에 집중하기로 한 롯데면세점이 대표적인 사례이고요. 어려운 시기에는 의외로 롯데의 각자도생 전략이 빛을 발할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오랜 경쟁 관계였던 롯데와 신세계가 이제 온라인에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왕좌를 향한 질주를 포기하지 않은 신세계와, 레이스에선 탈락했지만 대신 새로운 도전에 나선 롯데. 과연 이들 중 장기적으로 웃을 자는 누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