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소비를 결정하는 주된 동기 ‘공허’
생명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목표는 ‘생존’입니다. 일단 내가 살아남아야, 종족 번식을 통한 유전자의 영속이 가능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지구에 탄생한 이래, 대부분의 시간을 생존을 위해 투쟁했습니다. 하루하루 어떻게 먹을 것을 구해 살아남을지가, 인생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변화가 생겼습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며, 인류의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하게 된 것이죠.
산업혁명의 결과, 산업화가 고도화된 나라에서 더이상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투쟁하지 않아도 되는 계층이 생겨났습니다. 그 계층을 현대식으로 쉽게 표현하면 ‘중산층’입니다. 물론 중산층이라고 해도,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당장 내일 밥을 못 먹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산업혁명 이전에도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은 당연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체 인구로 볼 때 굉장히 극소수였습니다. 과거에는 매우 적은 수의 사람이 예외적으로 누렸던 삶을,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며 많은 사람들이 누리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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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문제에서 탈출하게 되면 마냥 좋을 것만 같았는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나타나게 됩니다. 바로 ‘공허’라는 감정입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할 때에는 애당초 ‘생각’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일주일 내내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육아를 해야 한다면, 그저 주어진 미션을 처리하기 바쁩니다. 하지만 생존 문제에서 벗어나게 된 사람들은 다릅니다. 생각을 할 여유가 생긴 것이죠.
나는 왜 사는가, 삶이란 무엇인가 등 삶의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는 말이 있듯이, 종교혁명 이후 신으로부터 독립한 인간은 자유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과 무한한 시간 속에서, 정말 미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은 공허함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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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사람들이 가지게 된 ‘공허’를 잊게 해준 것이 바로 ‘소비’입니다. 자본주의가 가져온 공허를 자본주의가 충족하게 된 것이죠. 어떻게 소비가 삶의 공허함을 잊게 만든 것일까요?
첫째. (쾌락) 소비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출근하고 주말에는 쉬는 등 반복되고 안정된 삶은 평화로우나 동시에 지루함을 가져옵니다. 사람들이 여행을 가고 싶어하는 이유도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소비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지루함을 해소할 수 있는, 새로움을 주는 것이죠.
새로운 물건은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무한히 발전합니다. 초창기 아이폰과 현재의 아이폰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디자인과 성능에서 많은 격차가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평생동안 무한히 등장하는 새로운 물건들을 소비하면서 공허함을 잊을 수 있게 된 것이죠.
둘째. (관계) 소비는 우월감과 열등감을 줍니다.
아무리 사고 싶어도, 돈이 없다면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내가 원하는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삽니다. 소비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격차가 선명해집니다. 예전에는 신분의 차이로 사람을 평가했다면, 이제는 연봉과 자산의 차이로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소비 수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결코 긍정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 공허함을 줄이고 삶에 자극을 주는 것은 확실합니다. 누군가는 우월감을 느끼면서 기쁨을 느끼고, 누구는 열등감을 느끼면서 분노를 느끼기 때문이죠.
셋째. (자극) 소비는 새로운 동기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비교는 결국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나도 저 상품을 사고 싶다,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나도 내 가족에게 좋은 물건을 사주고 싶다 등 욕망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게 되는 것이죠. 혹은 질투심에 못이겨, 나보다 잘난 사람을 어떻게든 끌어내리고자 하는 공격성으로도 연결되기도 합니다.
내가 성장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떨어뜨리고자 하는 마음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앞서 관계 측면에서 말씀드린 것과 동일하게, 그런 부정적인 동기조차 삶을 살아가는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삶이 공허하건 말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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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하며>
물론 소비만이 삶의 이유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만의 기준과 목표를 찾은 혹은 추구하는 사람은 소비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스님들은 아예 다른 기준에 따라 삶을 보고 있기에, 소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죠.
하지만 일단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 소비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에게 소비는, 의도적으로 자신만의 목표를 반복적으로 암시하고 노력하지 않는 한, 삶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버립니다. 공허함은 잊을지라도, 진정한 의미에서 좋은 방향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결국 그 공허함을 적절히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공허함은 우울증, 지루함 등 다양한 형태로 발현됩니다. 아이가 있으면 어찌어찌 키우는 과정에서 공허함을 느끼기 힘들지만 1~2인 가구의 증가는 삶의 본질을 온전히 마주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공허하다는 마음’은 앞으로 나타날 트렌드를 볼 때 중요하게 볼 요소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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